마태복음 21:18-22 예수께서 예루살렘 지도자를 상징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자 말랐고 놀란 제자들에게 진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일도 이루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소경과 저는 자들을 치료해 주시자 어린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찬양을 했지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분노하여 예수께 항의를 했다. 마태는 저들이 진짜 영적인 소경이고 저는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베다니에서 주무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성으로 들어 오면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내용이다.
18절은 "이른 아침"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전날 예수께서 항의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그냥 버려둔 채 예루살렘 성 밖의 베다니로 나가셨었다. 이제 이른 아침에 다시 성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들어온다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단 한 번만 나온 말로 원어에서는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 마자 아무것도 안 드시고 1.7마일 정도를 걸어오셨다. 그래서 배가 고프셨다는 것이다.
19절은 길 가에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다고 했다. 그러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나무에게 말씀하시길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 라고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즉시 말랐다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을 따라 해석할 때 전체 이스라엘이라기 보다는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앞에 나온 21:13절절에서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말씀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나무가 마른 것은 23:38에서 예언한 성전 파괴에 대한 가시적인 신호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무가 마른 것은 장차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인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성전 파괴는 건물의 파괴가 초점이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가 마른 것이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을 다스리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성전에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을 통해 나타내는 심판의 초점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는 바로 앞 21:12-13절에 나오는 우상숭배와 같이 행하던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 것과 연결하여 예수께서는 열매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과 연결하여 미니 드라마를 연출하신 것이다. 잎사귀는 무성하여 열매가 많을 것처럼 자랑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기에 사기 광고와도 같은 것이다. 예루살렘에 살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열매는 하나도 없는 자들이기에 심판 날에 완전히 말라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20절에서 제자들이 보고 놀라서 말하기를 어째서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렸는지 물었다. 이들은 전날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항의를 받고 그들을 무시하여 돌아서서 베다니로 가신 것과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떻게 갑자기 나무를 마르게 하셨는지가 궁금했던 것이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상징적 의미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1절에서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가 마른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 대신에 예수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공식을 사용하여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그 내용은 "만약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으로 시작한다. "믿음이 있다면" 이라는 말은 앞에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겉으로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무화과 나무 열매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이 무화과 나무에게 하신 일을 제자들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일이란 이 산에게 말하기를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그대로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산이란 말은 17:20절에서 나온 것처럼 단순히 정형화된 표현일 뿐이고 올리브산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이들은 본문의 문맥에서 이 산이 올리브산이나 성전산일 것이라고 하며 바다는 사해를 가리킬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기도에 대한 교훈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는 무화과 나무 비유와는 별도로 믿음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기에 단순히 큰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무화과 나무를 예루살렘 지도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유하셨다면 이 산도 역시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본거지인 성전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교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척 하지만 예수께서 찾아 보시니 믿음이 하나도 없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고 실제로는 믿음이 없다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무화과 나무처럼 말라버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진짜 믿음의 열매를 갖고 있다면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보다 훨씬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22절은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라 하셨다. 이는 믿음이 있으면 달라고 하는 것 뭐든지 다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는 빈껍데기가 아니고 실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고 그러한 기도는 모두 다 응답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예수께서 땅끝까지 제자 삼으라고 하신 그 사명을 수행하게 해 달라고 할 때 다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만약 껍데기만 그럴듯한 믿음이 아니고 진짜 열매 맺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두가지 믿음은 결국 시편 1편에 나타난 악인과 의인의 비유와도 통한다. 우리가 만약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된다면 우리도 역시 말라버리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막을 굴러다닐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