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4-1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소경과 저는 자들을 치료해 주시자 어린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찬양을 했지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분노하여 예수께 항의를 했다. 마태는 저들이 진짜 영적인 소경이고 저는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성전 바깥 뜰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람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상과 의자를 뒤엎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고쳐 주시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항의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14절은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왔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고 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치료 받은 일은 15:31절에서도 나왔다. 15:31절은 예수가 바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는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21:9절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에 이어 이번에도 예수가 바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는 사건이다. 소경과 저는 자들은 유대인들이지만 성전 안마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 바깥 마당에서 머물다가 예수께 나아와 치료를 받은 것이다. 이들의 질병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제 성전 안마당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5절은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두 가지를 보고서 분노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본 것은 먼저 예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이다. 소경과 저는 자들을 치료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 성경을 잘 아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메시야가 오셨다며 찬양을 했어야 했다. 이들은 더구나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아이들이 외치는 것도 보았다. 아이들도 이러한 기적을 보고 예수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금방 알고 이렇게 찬양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린아이들보다 성경을 더 모르는 바보들이 아니라면 알면서도 찬양 대신 분노한 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예수를 대적하는 것일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16절에서 분노한 이들이 예수께 다가와 "저희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있소?" 라고 물었다. 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이 예수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질문한 것이다. 왜 못하게 말리지 않고 그냥 듣고 있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렇다" 라고 대답하셨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라고 반문하셨다. 이는 시편 8:2에서 인용한 말씀이다(LXX Psalm 8:3). 시편 8편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암송하는 유명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렇게 유명한 시편을 읽어 본 적도 없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란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젖먹이란 그보다 더 어린 젖을 빠는 아주 어린 아기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찬미를 온전케 했다"는 말은 수리했다는 뜻이다. 어른들이 망가뜨린 찬미를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이 수리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시켜서 망가뜨렸지만 순수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시편 8:2절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한 것이다. 이 어린아이들은 예수가 곧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찬양을 한 것이니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망가뜨려 놓은 찬양을 수리해 놓은 셈이다.
17절은 그들을 남겨두고 성 밖으로 나가서 베다니로 들어가 거기서 밤을 지내셨다고 했다. 예수님께 신성 모독이라고 항의하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무시하고 그냥 내버려둔 채로 돌아서서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과 논쟁할 때가 아니기에 그냥 내버려 두고 돌아서서 성 밖으로 나와 베다니에서 묵으신 것이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께서 소경과 저는 자들을 치료하신 것과 어린 아이들의 찬양을 통해 예수님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러나 유대교의 최고 높은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들과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은 가장 유명한 시편도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것들에 말씀을 볼 줄도 모르는 눈이 먼 소경들이고 또 말씀을 행할 줄도 모르는 불구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19:21절에서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포기해야 말씀을 보고 깨달아 행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또 20:17절에서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눈을 가려 하나님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소경이 되고 또 알면서도 그 말씀을 따라 똑바로 걸어갈 줄 모르는 저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 때문에 권세를 누리는 사람들도 예수님 당시 유대교 안에서 권세를 누리던 자들과 똑같이 영적인 소경이 되고 영적인 저는 자들이 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