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2-13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성전 바깥 뜰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상과 의자를 뒤엎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나귀와 그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수많은 무리들은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바닥에 깔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찬송을 불렀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내용이다.
12절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사고 파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셨다고 했다. 성전 뜰이란 성전 바깥 마당인 이방인의 뜰이다. 예수께서는 파는 상인들만 내쫓으신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들까지도 다 내쫓으신 것이다. 또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와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고 했다. 왜 팔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탁자와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는 뒤엎기만 하셨는지를 따지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예수께서 다 내쫓으시고 뒤집어 엎으신 행동의 초점은 예수께서 분노하셨다는 것에 있다. 예수께서 분노하신 것은 그러한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장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행위들을 근본적으로 반대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뜰인 성전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 것 때문이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들어 사고 팔고 돈을 바꾸면서 성전의 이방인의 뜰은 소란한 장터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성전의 이방인의 뜰이 장터가 된 것은 항상 있던 일이 아니라 명절 때 며칠만 그렇게 허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대의 유대교 랍비들의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일들은 본래 성전의 건너편에 있는 올리브산에서 하도록 제한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도착하기 얼마 전에 명절이 되어 순례객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성전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이미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물론 먼 곳에서 성전에 예배하러 온 자들이 구입한 동물들이 올리브산에서 성전 산까지 오는 동안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성전 지도자들은 먼 곳에서 온 순례객들을 돕기 위한 좋은 뜻으로 그렇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분노는 이방인의 뜰이라는 장소 때문이다. 당시 이방인들은 성전의 바깥 마당 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먼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찾아온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장소였다. 유대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필요한 제물을 사고 돈도 바꾼 뒤 소란한 곳을 피하여 성전 안 뜰인 유대인의 마당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기도를 할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비롯해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했기에 이방인 예배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은 것이다.
13절을 보면 그러한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13절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기록하기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기록하기를" 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말씀을 인용하신다는 뜻이다. 그 말씀은 이사야 56:7절에서 온 것이다. 그 내용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본래 이사야 56:7절은 "내 집은 모든 민족들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우게 될 것이다" 라고 되어있는데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라는 말을 빼셨다.
그 이유는 성전이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예수께서 가지고 오신 그 나라의 중심에 이방인들에 대한 소망이 서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지고 이방인들이 교회의 중심에 있었기에 의미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찢어져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구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이 없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뜰을 장바닥으로 만들어 놓고는 자기들만 성전 안뜰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에 분노하신 것이다. 이사야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은 모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다. 원어에서 강도라는 말은 돈을 빼앗는 범죄자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반란군 지도자들에게 쓴 말이다. 이들은 무력으로 이방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의 나라를 독립시키려던 자들이다. 이들은 유대민족만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민족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의 뜻은 그러한 유대의 민족주의자들의 요새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앞 뒤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짖던 무리들 역시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다. 차이는 직접 반란군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두개파나 바리새파나 열심당이나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유대민족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던 민족주의자들이었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유대민족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반대로 열심당은 무력으로 유대민족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하며 이방인들은 멸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이 기도하는 성전 마당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는 말이 성전을 지배하던 자들이 그러한 반란군의 요새로 만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에 더 깊이 숨겨진 뜻은 본래 의도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의 장소로 만들었다는 뜻일 수 있다. 성전을 그렇게 만든 중심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이 성전을 하나님 나라를 유대민족의 나라로 만들려는 우두머리 이기에 성전을 그들의 요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예수께서 오늘날 교회에 오신다면 똑같이 뒤엎으시며 "내 집은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외치실지 모른다. 오늘날 교회가 만약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 하는 요새를 만들고 있다면 말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힘이 있는 정치가들이나 높은 지식을 가진 지식인들끼리 모여 자신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교회를 자신들만의 요새로 만들려 한다면 말이다.
마태복음 8장으로 되돌아가 보면 예수께서는 이방인인 로마군 백부장의 종을 치료해 주심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벽을 허무셨다. 또 종과 자유자의 벽도 동시에 허무신 것이다.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시면서 남자와 여자의 벽도 허무신 것이다. 몰려든 무리들을 치료하신 뒤 무리들이 열광하자 예수께서는 건너편 이방인의 땅으로 가자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세운 이러한 경계를 넘어가자고 하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만 성전 안뜰로 들어가 우리만 기도하면 안된다. 그것은 예수께서 허무신 경계를 우리가 다시 세우는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경계선 너머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