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15-20 죄를 짓고 믿음의 공동체를 떠난 사람을 한 사람이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두 사람 더 데리고 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 전체가 권면하라. 그래도 듣지 않을 때 완전히 버릴 것인가 아니면 계속 용서하고 권면할 것인가는 주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결정하라.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모든 양들을 다 중히 여기고 돌보고 계시에 작은 사람 하나라도 아래로 생각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스스로 걸려 넘어져서 믿음의 길에서 떠난 잃은 양을 어떻게 용서하고 다시 양의 무리에게 되돌려 놓을 것인지에 관한 말씀이다.
15절은 "그러나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4절에서 한 사람이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이는 "한 사람도 망하지 말아야 하지만 만약 망했다면"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죄를 범했다는 말은 단순히 내게 잘못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공동체 전체에 아주 심각한 죄를 범하고 완전히 떠난 길을 잃은 양 같은 사람이다.
새번역에서 [너에게] 라고 괄호 안에 넣은 말은 오래된 권위있는 사본에는 없는 말이고 후대에 삽입된 말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게 죄를 범했는지 분명하지 않기에 바로 이어 나오는 당사자에게 죄를 범한 것으로 보고 후대의 사람들이 삽입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인에 대해 범죄한 것이고 개인적인 감정이 된다. 그러나 본문의 뜻은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죄를 범하고 이미 공동체에서 멀리 떠나버린 길을 잃은 양에 대한 것이다. 절대로 개인적인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말이 아니다.
"가서" 라는 말도 이 사람은 이미 공동체에서 떠나 멀리 가버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양 무리에서 떠난 그 사람에게 찾아가라는 뜻이다. 너와 그 사람 단 둘만 있는 자리에서 권고하라고 했다. 찾아간 사람은 그 사람의 심각한 죄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권고나 충고로 번역된 말은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 책망이라는 말로 주로 번역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사람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고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근거를 들며 증명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그 사람의 잘못을 꾸짖으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죄를 짓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가 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따뜻한 말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러가지 증거를 들며 깨닫게 해 주라는 뜻이다. 그렇게 했을 때 듣는다면 그 형제를 얻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잃은 양을 찾은 것이라는 뜻이다.
16절은 "그러나 만일 듣지 않거든"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혼자 가서 권면했는데 듣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둘이나 세 명의 증인의 입으로 함께 서서 권면하라는 것이다. 이는 그 죄를 깨닫도록 알려주고 공동체로 돌아오라고 함께 권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은 또한 증인의 숫자이다. 두 세 사람이 권면했을 때 듣고 돌아오면 좋은 일이지만 만약 안들을 경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것이다.
17절은 "그러나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듣지 않는다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 듣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따뜻한 권면의 말도 다 무시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 다음 절차는 교회 전체에 말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알리고 교회의 대표들이 가서 권면하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 같이 여기라고 했다. 이방인과 세리는 당시 유대교 공동체에서 완전히 제외된 사람들이다. 이방인과 세리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고 상종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다. 믿음의 형제였지만 그렇게 죄를 짓고 떠나버린 사람이 끝까지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경멸하고 다시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18-20절은 앞부분과는 달리 기도에 관한 권면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결정한 것이 곧 하늘의 결정이라는 뜻이다. 18절에서 맨다는 말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푼다는 말은 그 죄를 용서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20:23절이 이 구절의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요한복음 20:23절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뒤 믿음의 공동체가 결정한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16:19절에서도 18:18절과 거의 똑같은 말씀이 나온다. 믿음의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고 천국 문을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기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맨다는 말은 천국 문을 잠가 놓고 못 들어가게 한다는 뜻이고 푼다는 것은 천국 문을 열어놓고 들어가게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매는 것은 죄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고 푸는 것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19절은 원어에서 "다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진리를 확정지으신다. 만약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같은 생각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증인의 숫자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생각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곧 성령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20절은 19절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정지어준다. 두 세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생각으로 결정을 한다면 그 결정의 자리에 예수님도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22절에서 성령 받으라고 하신 뒤에 죄를 용서하든지 그대로 두든지 결정한 대로 된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일치된 생각으로 결정하면 용서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두든지 그 결정한 것이 곧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불러서 책망하고 내쫓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은 이미 죄를 짓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찾아가서 권면하여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 초점이다. 만약 듣지 않으면 두 사람 더 데리고 가서 권면하여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서 교회 전체가 권면하여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냥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취급하고 멸망의 길을 가도록 놔 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권면할 때도 듣지 않으면 무조건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용서하고 계속 권면할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둘지는 교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성령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 두 세사람이 모여서 결정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절차대로 해서 그냥 버리라는 뜻은 아닌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무리를 떠난 길 잃은 양을 용서하고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될 때는 완전히 포기할지 말지 결정은 교회가 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