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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8:10-14

Dawn Word

마태복음 18:10-14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12. 2.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8:10-14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모든 양들을 다 중히 여기고 돌보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사람 하나라도 아래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전 말씀에서는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제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지만 누구든지 이러한 제자들을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에 빠질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10절은 원어에서 "조심하여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본래 눈으로 보라는 뜻이지만 명령형으로 쓰일 때는 마음에 담아두고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러한 작은 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업신여긴다는 말은 "아래"라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작은 사람을 아래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작은 사람은 실제로 어린아이가 아니다. 18:2-3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섬기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신분이 비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비천한 출신의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 세상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무시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도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기 쉽다. 높은 사람이 자기를 낮추면 누구나 조심하며 대하겠지만 본래 낮은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 누구나 아래로 보고 멸시하기 쉬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잘 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저희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저희의 천사" 라는 말에 대해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저희의 천사"라는 말을 수호천사로 설명하거나 수호천사의 개념을 유대교의 자료들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반대로 "저희의 천사"라는 말이 수호천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호천사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이 있는 것이다. 수호천사로 보는 사람들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벗어나 너무 멀리 갔다. 성경은 항상 본문과 전후 문맥을 먼저 봐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희의 천사가 아니라 "항상 뵈옵느니라"라는 말에 있다. 하늘의 수많은 천사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존재들이라고 했기에 이들은 늘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께 보고를 드리는 최측근의 천사들인 것이다. 이러한 천사들이 이런 작은 자들의 동향을 항상 하나님을 뵈며 항상 하나님께 보고를 드린다는 뜻이다. 천사는 스스로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을 받아 심부름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면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잘 살펴 보고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낮은 자들을 항상 돌보고 계신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는 의미이다.

12-14절은 잃은 양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낮은 자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문맥으로 보아도 이는 수호천사가 지켜준다는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돌보신다는 뜻이다. 12절은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하시려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만약 한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다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나머지 양들을 그냥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만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목자는 모든 양을 다 소중히 여기고 돌본다는 뜻이다. 그 중 어느 한 마리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원어에서 13절은 "만약 그 양을 발견했다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부분은 이어지는 말씀과 끊어서 읽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추고 반응을 살펴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쁜 마음에 공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신 뒤에 이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셨을 것이다. 그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에 대해 더 기뻐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잃은 양 한 마리에만 있지 않고 모든 양들에 있다. 단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목자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14절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에 대한 적용이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다. 주목해야 할 말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 라는 말이다. 잃은 양만 작은 사람이 아니라 백 마리 양이 다 작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잃은 양의 비유는 흔히 전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초점은 10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 다른 성도들을 아래로 생각하고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18:4절에서 이런 하찮게 보이는 사람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한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 모두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들은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었다. 반대로 멸시를 받던 사람들은 농부나 어부나 상인들이나 목자들과 같은 평범한 하층민 노동자들이었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 같은 지도자들은 자신들만 갖고 후손들에게 전달하던 율법으로 이러한 하층민들을 정죄하고 유대교에서 내쫓기까지 했다.

그런데 야고보서 2:2-4절에 보면 나중에 야고보가 가르치던 교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금반지를 낀 신분이 높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특별대우를 하면서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오면 서 있든지 발 밑에 앉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중에 제자들이 이끄는 교회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생길 것을 아시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함부로 아래로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높여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아이처럼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함께 낮아져서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 당시 유대교와 같고 야고보의 교회와 똑같이 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부터 10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조심하도록 하자. 이 말씀을 간직하고 나부터 조심하며 겸손히 섬길 때 교회는 우리 주님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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