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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8:5-9

Dawn Word

마태복음 18:5-9

겸손히 섬기는 자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12. 1.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8:5-9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제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지만 누구든지 이러한 제자들을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에 빠질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높아지려는 욕구를 버리고 완전히 돌아서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경우와 반대로 자기를 높여 남을 넘어지게 하는 경우를 설명하신 내용이다.

언뜻 보면 5절도 어린아이에 관한 내용이기에 4절에 붙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1-4절에서 자기를 낮추라고 하신 뒤에 5-8절은 영접하면 어떻게 되고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기에 5절은 6절에 붙여서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번역은 NIV와 똑같이 나누었는데 문단을 잘못 나누어 놓았다.

5절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파이디온"이라는 말인데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는 어린 아기를 가리킬 때 썼다. 이 말은 신생아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성숙한 사춘기 이전의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1-4절에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야 한다고 했기에 제자들이 사회적 신분이 가장 낮은 존재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5절에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하는 말은 실제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사회적 신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세운 제자들을 영접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0:40-42절에서도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 1-14절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제자들에 대한 것이다.

6절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라는 말을 "작은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하나라고 하셨기에 역시 예수님 명령에 따라 자기를 낮추어 가장 낮은 신분인 어린아이가 된 제자들을 가리킨다. 물론 이는 열 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렇게 자기를 낮추어 하찮은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높이며 섬긴 모든 믿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말은 죄를 짓게 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는 뜻이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기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 버리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다가 핍박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바울도 예수를 믿던 어린아이 같던 신자들을 다시 유대교로 되돌려 놓은 거짓 예언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바울이 보낸 편지들에 나타나 있다.

그렇게 자기를 낮추어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던 제자들을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걸려 넘어져 떠나게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했다. 개역에서 연자 맷돌로 번역한 말은 소나 나귀가 돌리던 아주 큰 맷돌의 윗짝을 뜻한다. 당시 사람들이 쓰던 돌로 만든 도구 중에 가장 크고 무거운 것이다. 바다는 악의 상징이고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멸망을 뜻한다.

7절은 원어에서 "화가 있다! 세상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화란 복의 반대말이고 저주를 받는다는 뜻이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춘 제자들을 넘어지게 하는 죄인으로 저주를 받은 대상은 "세상(코스모스)"이다. 세상이 바로 제자들을 넘어지게 하는 범인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이란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고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던 유대인들이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필요하다는 뜻이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는 타락한 세상의 속성 때문이고 또한 제자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타락한 세상 사람들로 인해 제자들이 연단을 받고 시험을 받는 것은 필요하지만 제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있다는 것이다.

6-7절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8절은 이제 걸려 넘어지는 제자들에 대해 경고하신다. 만약 자신의 손이나 발이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찍어서 내버리라고 하신다. 이는 실제 손이나 발을 자르라는 뜻이 아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부분이 손이라면 손을 잘라 버리고 발이라면 발을 잘라 버려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두 손 두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손이나 발이 없는 장애인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손 발을 자르라는 말은 행함으로 죄를 지을 그 근원까지 잘라 버리라는 뜻이다.

9절에서는 똑 같은 내용이 눈으로 바뀐 것 뿐이다. 만약 네 한 눈이 너를 넘어지게 한다면 그 눈을 뽑아 던져버리라고 하신다.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게헨나의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신다. 8절에서 영원한 불이 이번에는 "게헨나의 불"로 바뀌었다. 생명이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영원한 불이나 게헨나의 불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뜻한다.

마태복음 5:27-32절에서도 손을 찍어버리라는 말과 눈을 빼서 던져버리라는 말이 똑같이 나온다. 마태복음 5장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은 성적 유혹이다. 그러나 18:1-9절의 문맥에서는 제자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세상 유혹으로 확대된 것이다. 만약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니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면 마지막 심판날에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던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멸시를 받게 해서 두려움을 주어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했다. 그러나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적은 내부에 있다. 오늘 말씀의 가르침이 시작된 것은 18:1절에서 제자들이 누가 더 높으냐고 질문한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무시를 당하며 다른 사람을 섬기라 했는데 제자들은 당시 유대교의 종교적 사회적 질서를 따라 누가 더 높은지를 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믿음에서 떠나 유대교로 돌아간 사람들도 자신들이 갖고 있던 사회적 신분을 잃을까 두려워서 떠난 것이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은 누가 너 높은지 따지고 있다. 오늘날도 세상은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큰 권력을 가졌거나 높은 명예를 가진 사람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 풍조가 교회에도 들어와 세상에서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이 높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교회에서도 세상의 질서를 따라 높고 낮음을 판단한다.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우고 여러 직분을 주는 것은 섬기라고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직분에도 계급을 정해 놓고 집사보다는 장로나 권사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직분을 세상의 계급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이나 어떤 일을 맡겨주든 그것은 어린아이처럼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람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고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세상의 질서를 따라 교회 안에서도 높아지려는 유혹이다. 만약 그런 유혹이 우리를 끌고 간다면 단호하게 잘라버려야 한다.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는 심정으로 잘라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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