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높아지려는 욕구를 버리고 완전히 돌아서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이전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런 일로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성전세를 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도 두 번의 수난 예고와 연결해서 하시는 마지막 유언들의 시작과도 같은 말씀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1절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때는 성전세를 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고기를 잡아서 거기서 나온 동전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신 그 때이다. 이 때는 유월절이 가까웠고 이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바로 그 때이다. 바로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하늘의 왕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물은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고 두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다스리시게 될 하늘의 왕국에서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지 물은 것이다.
2절에서 예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에 세우셨다. 3절에서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하신 것은 하나님 말씀을 지으신 원저자이신 예수께서 원 저자의 권위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영원한 진리라는 뜻이다.
말씀하신 내용의 시작은 "돌이켜"라는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왕이 되시면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논쟁을 벌이며 물밑에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방향을 180도 완전히 돌아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세운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는 1절에서 누가 크냐라고 할 때 크다는 말의 반대이다. 제일 높은 자의 반대가 제일 낮은 어린아이인 것이다. 이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서 가장 낮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어린아이처럼 낮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예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4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며 이 부분의 결론을 내리신다. 예수께서는 아마도 어린아이를 앞에 세우시고 어린아이 키만큼 낮추시기 위해 앉으셔서 어린아이의 양 어깨를 잡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바로 하늘의 왕국에서는 큰 자라고 하셨다. 당시나 오늘이나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비천하게 낮추는 자가 바로 하늘의 왕국에서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제자들도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모두가 자기를 어린아이처럼 비천하게 낮추어 섬기되 죽기까지 섬겼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모두 그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를 낮추며 섬기다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다가 순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에서 힘을 갖게 된 뒤에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또 다시 서로 큰 자가 되려고 다투었다.
지금도 교회에서 하는 일은 다들 섬긴다고 말한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이나 상관없이 모두들 교회에서 높아지고 존경을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섬긴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주인으로 삼고 높여주며 자신은 종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섬기고 나면 다들 주인이 되려하고 높아지려고 한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높여주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자신이 이렇게 수고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당시 어린아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욕을 먹고 발로 차이고 매를 맞으면서도 그대로 순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실제로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가 하늘의 왕국 즉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이 땅의 교회에서 자신을 낮추라는 것이 주님의 유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