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53-58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능력을 행하셨을 때 고향 사람들은 그 말씀과 능력이 어떤 귀신들에게서 왔는지 모르겠다며 예수를 거부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께 훈련 받은 율법학자인 제자들은 오래된 보물과 새로운 보물들을 함께 꺼내 와서 보여주는 집주인과도 같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고향에서 가르치실 때 배척 받으시는 장면이다.
53-54절은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뒤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인 나사렛으로 가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했다. 그들의 회당이란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께서 예배하던 회당이다. 그 회당에 속한 사람들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만 알고 있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는 "그들의 회당"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그들은 놀랐다고 했다. 놀랐다는 말은 본래 "밖으로"라는 말과 무거운 몽둥이 같은 것으로 얻어 맞은 것을 뜻하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커다란 몽둥이로 한 대 얻어 맞아 정신이 몸 밖으로 튀어나가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얻어 맞아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뜻이다. 이들은 정말 정신이 나가 기절해 쓰러질 만큼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않고 오히려 이 사람이 이런 지혜와 이런 능력을 어디서 났느냐고 서로 물었다. 예수의 가르치심과 그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그렇게 기절할 만큼 놀랐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 것은 그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귀신들에게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예수님의 어릴적부터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예수께서 자라고 배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는 훈련을 받지 않고 목수 일을 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놀란 고향 사람들은 55절에서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사장의 아들이나 율법학자의 아들이 아니고 평범한 목수 일을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기에 율법에 관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그 모친의 이름과 형제들의 이름만 나온다. 이는 요셉은 이미 죽었다는 뜻이다. 만약 살아 있다면 그 아버지의 이름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56절에서는 그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모친과 형제 자매들도 자신들과 같이 평범한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은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아는데 예수님의 능력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귀신에게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57절 앞부분에서는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다고 개역은 번역했다. 새번역은 "달갑지 않게 여겼다"라고 부드럽게 번역했다. 원어의 본래 의미는 걸려 넘어졌다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믿음으로 가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들이 본래 예수에 대해 알고 있던 것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57절 뒷부분에서 예수께서는 이처럼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고향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16:14절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선지자로는 여기고 존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과 가족들은 예수를 선지자로도 여기지 않고 귀신들렸다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58절은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고향에서도 분명히 놀라운 가르침을 전하시고 능력도 행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고 걸려 넘어진 고향 사람들로 인해서 더 이상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초점은 예수께서 고향에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셨다는 것에 있지 않다. 초점은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은 것에 예수께서는 정말로 놀라셨다는데 있다.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것에 얽매여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배척했다. 그러한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은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을 보면 모든 유대 사람들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유대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에 얽매여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예수를 배척하여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예수라는 한 인간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 것이고 결국 하나님을 배척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척한다.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던 생각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믿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과거 조상 대대로 믿어온 무속신앙이나 불교 등의 영향으로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기독교인들도 복음 자체보다는 기독교가 나라가 부강하게 하고 개인들이 잘살게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크게 부흥해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종의 모습으로 낮은 자리에서 섬기시는 본을 보이신 예수를 배척하고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녀들을 잘 살게 해 주고 건강하게 해 줄 예수를 믿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도 결국 나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예수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바로 가라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도 결국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고 결국 우리도 예수를 거부한 나사렛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