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43-45 더러운 귀신이 나갔지만 그 안에 예수님의 영을 모시고 살지 않는 악한 세대들은 전보다 더 악하고 많은 귀신들이 들어가 전보다 더 심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던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부활의 증거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며 마지막날에 예수를 믿은 이방인들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심판할 것이라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을 심판할 것이지만 반대로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다가 실망하고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고 하신다.
43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42절과 연결이 된다. 이어지는 비유의 이 악한 세대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방인들이 마지막 때에 재판관이 된다는 것과는 반대로 유대인들의 운명은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43절에서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라는 말에서 "그 사람"이란 12:22절에서 예수님께서 치료해 준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비유로 사용하신 것이다. "물 없는 곳"이란 사막을 뜻한다. 물 없는 곳이란 사람 뿐만 아니라 귀신들도 쉴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사막을 두루 다니며 쉴 곳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44절은 그 때에 귀신이 말하길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라고 하고 돌아와보니 그 집이 비어 있었고 청소가 되었고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수리되었다는 말은 화장한다 또는 단장한다는 말이기에 단순히 수리되었다기 보다는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뜻이다. 나간 집 같던 집이 완전히 새집같이 되고 번쩍거리는 아름다운 가구들로 꾸며진 것과 같은 그림이다. 나갈 때는 집이 너무 낡아서 살수가 없어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나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데도 갈 곳을 찾지 못하자 회개한 귀신은 차라리 낡아서 살 수 없던 그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45절에서 이 귀신은 저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 그 집에서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집이 청소가 되고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것에 있지 않다. 집이 아름답게 꾸며졌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에 예수께서는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되라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치료해 주신 귀신들린 사람이야기가 아니라 "이 악한 세대"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이는 12:39절에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줄여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표적을 구하며 더 나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 대적하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을 따르던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권능으로 치료도 받으며 예수님으로부터 이익을 누렸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집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주시고 치료해 주실 때는 메시야가 왔다고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니라며 거부한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더 나은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단장을 마친 빈 집 같아서 훨씬 더 악하고 많은 귀신 귀신들이 들어와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회개하지는 않고 병 고침 받고 자녀들이 잘되고 사업도 잘 되는 것만 바라며 사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악한 영은 떠나갔지만 그 마음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면 그 집은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한 영들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면서 우리 자신의 유익만 구하며 산다면 우리도 오늘 말씀의 비유에 나온 악한 세대와 똑같은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