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28-30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얹어 준 무거운 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부르시며 그 짐을 가볍게 해 주실 것이니 와서 배우라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배척 당하신 뒤에 교만한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드러내신 것을 감사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로운 계획을 그대로 받아서 자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드러내신다고 하셨다. 이제 11:25절에서 젖먹이로 비유된 가난하고 억압을 받던 자들을 부르시며 쉬게 하신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란 11:25절에서 젖먹이 어린아이들이다.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시키고 견딜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완전히 얹어 준 자들 역시 11:25절에 나온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게 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의 견딜 수 없도록 극심한 율법주의이다.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613가지의 명령들과 수많은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꼼짝도 못하게 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러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판하셨다. 그 중 23:4절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다. 따라서 무거운 짐이란 성경 구절을 가지고 수많은 세부규칙을 만들어 자신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는 사람들은 꼼짝 못하게 얽어매었던 것을 뜻한다.
29절은 이와 반대로 "내가 너희에게 얹어 주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신다. 이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지키라는 가르침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어떤 것이 간음이고 어떤 것은 간음이 아닌지 수많은 규정을 만들었지만 예수님은 음욕을 마음에 품고 있기만 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딱 한마디로 끝내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억하기도 쉽고 많이 배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마디면 끝날 일을 수많은 규정들을 만들어 가르친 것은 자신들은 빠져 나가고 무지한 백성들은 걸려들게 하려는 악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단히 가르치시면서도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본 뜻을 깨닫게 하여 지키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쉽고 가볍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해야 하기에 악한 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진다.
이어서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배우라는 이유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설명하신다. 온유하다는 말은 민수기 12:3절에서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온유한 자란 마태복음 5:5절에 나온대로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태도를 통제할 줄 알기에 남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룩하다 생각하고 자신들의 참 모습을 볼 줄 몰랐기에 자신들이 가르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들을 짓밟고 정죄해서 내쫓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과는 반대로 온유하셔서 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신다는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6:4-10에서 스스로 그리스도를 위해 참고 견디던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주를 기다리며 참고 견디는 면서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 주는 사람들이 바로 온유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높여주신다고 바울은 말했다.
겸손하다는 말은 신분이 낮은 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스스로를 거룩하다 생각하며 자신들을 높이던 바리새파 사람들과는 반대가 되는 성품이다. 예수께서는 당시 가장 낮고 천한 사람들이던 억압받던 자들과 죄인들과 함께 하셨다.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낮고 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신 것은 율법을 어겨 쫓겨났던 가장 낮고 천한 사람들도 이해해 주시고 참아주시며 그들과 함께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뜻이다. 그렇게 예수께로 와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쉴 수 있게 하시는 이유가 30절에 나온다. 이는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는 것이다.
쉽다는 말은 좋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5:39절에서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 할 때 쓰인 말이다. 이는 11:27절에서 수고한다는 말과 반대말이기에 편안히 쉴 수 있으면서도 아주 좋다는 뜻이다. 또 베드로전서 2:3절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이라는 말에서 인자하심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율법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께 배우고 주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며 순종할 수 있으니 정말 좋은 것이다.
가볍다는 말도 11:27절에서 완전히 무겁다는 말과 반대가 되는 말이다. 수많은 율법 규정들에 억눌려 숨도 쉬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 짐을 다 치워주시고 가볍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가볍다는 말은 마태복음 23:4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감당도 못할 무거운 짐을 얹어 주고 자신들은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온 대조와도 같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쓰러질 만큼 무거운 짐을 얹어 주었지만 예수께서는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들만큼 가벼운 짐만 들게 하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정죄한다면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과거에 그랬던 것을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받아준다면 예수님처럼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워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며 교만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낮아져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본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갈 수록 바리새파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다. 온유하지 못하고 정죄하기만 하며 겸손하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