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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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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태복음 11:20-24

기적만 따르던 저주받을 도시 사람들

2021. 10. 4.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1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1:20-24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으로 들려주시고 기적으로 보여주신 것을 듣고 보고도 회개하지 않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들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고 저주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 사람들은 요한이 전한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악이나 예수님이 전한 기뻐 춤을 추며 찬양하라는 하나님의 음악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반대만 할 것이라 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이전 말씀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악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도시 이름들을 말씀하시며 저주하신 내용이다.

20절은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하셨다고 했다. 요한이 와서 장례식의 음악을 연주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혼인잔치의 음악을 연주하셨는데도 춤을 추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 5-7장은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왜곡시킨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의미를 들려주신 것이다. 8-11:1절은 기적이야기인데 산상수훈에서 들려주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신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5:1-11:1절은 들려주시고 바로 이어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이므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인 예수님의 사역이다. 그런데 당시 예수께서 사역하셨던 갈릴리의 도시 사람들은 기적만 좋아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던 것이다.

21절에서 고라신과 벳세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고라신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도시였고 벳세다는 갈릴리 호숫가의 북쪽 끝에 있던 도시였다. 둘 다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던 도시였다. 가버나움을 본부로 삼으시고 가버나움의 인근에 있는 두 도시에서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이 두 도시를 저주하시기를 두로와 시돈과 비유하셨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던 페니키아의 중심도시들이었다. 이사야 23장에서 이사야가 말한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과 연관시켜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주받은 이방 도시들의 대표로 두로와 시돈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행하신 사역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셨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를 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고라신과 벳세다가 이방 도시들인 두로와 시돈보다 훨씬 더 악하기에 저주를 선포하신 것이다.

23절에서 가버나움은 소돔과 대비된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중심도시로 그 자부심이 대단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음부는 죽은 자들이 가는 땅 속 가장 낮은 곳이다. 가버나움은 가장 깊은 땅속 죽은 자들이 가는 세상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저주하신 것이다. 이는 이사야 14:13-15절에서 바벨론에 대한 저주에서도 나온다. 교만한 바벨론이 하늘까지 높아졌는데 음부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진다고 했다. 스스로 갈릴리에서 최고가는 유대교의 중심지로 자부했는데 예수께서는 바벨론처럼 저주를 받아 음부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지게 된다고 하신 것이다.

가장 큰 자부심을 가졌던 가버나움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악한 사람들로 대표되는 소돔과 비교하신다. 만약 예수께서 소돔에서 그러한 권능을 행했더라면 소돔성은 멸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악한 소돔 사람들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도 받아야 할 것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완악한 자들에게 그 말씀을 믿게 하려고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도 갈릴리 사람들과 같이 기적을 행하는 사역자가 있다면 도시락 싸가지고 쫓아다니며 그 기적을 체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전하는 사역자가 있다면 아예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어떠한 어떠한 놀라운 은사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란 예수님 말씀을 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그 사랑을 행하는 것이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도 방언과 예언과 병을 고치는 은사들을 큰 은사로 사모하고 그러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높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라신과 벳세다 사람들처럼 저주받을 사람들이고 가버나움 사람들처럼 완전히 멸망할 사람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순종하지 않고 기적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오늘날도 영원히 멸망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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