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7-11 예수께서는 요한이 갈대처럼 세상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는 사람도 아니고 왕의 신하들처럼 왕의 명령에 굽신거리는 사람도 아니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사람들이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예수가 진짜 메시야인지 의심을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자신들의 생각에 때라 예수님께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비록 요한이 예수가 진짜 메시야인지 질문을 했지만 요한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고 참된 예언자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어진다.
11:7절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비록 요한이 예수가 진짜 메시야인지 물었지만 요한은 사람들의 소문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예수가 진짜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다. 요한은 그 소문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도 사람인지라 메시야가 오시면 이사야의 예언대로 악인들을 멸하시고 자신은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석방이 늦어지자 기다림에 답답한 나머지 예수께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11:7-9절은 모두 "무엇 때문에 나갔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에 이어지는 세가지 질문에 담긴 그림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나타나 있다. 먼저 7절에서 예수께서 첫번째로 질문하신 것은 "무엇을 구경하려고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는 것이다. 구경한다는 말은 놀라운 광경이나 멋진 공연 같은 것을 구경하러 모이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예수가 진짜 메시야가 아니라는 소문에 흔들리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8절에서도 예수께서는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8절과 9절에서는 구경한다는 말이 단순히 본다는 말로 바뀌었다. 왕궁에 있는 신하들은 그렇게 몰려가서 구경할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이라는 말은 갈대와 같은 요한을 보러 나간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대답한 것을 전제로 말씀하신 것이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란 헤롯의 왕궁에 있는 신하들을 말한다. 갈대는 약하기에 바람에 흔들리지만 왕궁에 있는 신하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왕 앞에서 굽신굽신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수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이지만 왕의 신하들은 능동적으로 굽신거리며 더 크게 흔들린다.
부드럽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6:9절에서 "탐색하는 자"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고린도전서 6:9절에 나오는 탐색하는 자라는 말은 나이가 많은 스승이 십대 청소년인 제자를 데리고 동성애를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권력을 가진 강한 남자들에게 굽신거리고 그들이 원한다면 동성애의 상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무식한 일반 백성들이라면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이 원한다면 뭐든지 다 해줄만큼 굽신거리는 왕의 신하들이다. 역시 요한은 그런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9절에서도 역시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라고 질문하시며 바로 이어서 "예언자?"라고 하셨다. "그러면"이라는 말은 8절에서 말씀하신 부드러운 옷 입은 왕의 신하를 보러 나간 것이 아니라는 대답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다. 계속 아니라고 하다가 이번에는 "맞다!"라고 하셨다. 예언자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일반 백성이나 스스로 굽신굽신 하며 왕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다 하는 왕의 신하들과는 완전히 반대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은 왕이 죽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사람들이다.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헤롯 왕에게도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간음이라고 말해 갇힌 강직한 사람이다. 요한은 갈대나 왕의 신하들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사람이다.
10절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낼것이라"라는 말씀이 바로 이 사람 요한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이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1절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는 침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을 것이라 하셨다. 여자가 낳은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성령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말이다. 요한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예수님 이전 세대의 어떤 믿음의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하셨다. 천국은 여자가 낳은 자가 아닌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예수께서는 아마도 자연적 출생으로 태어난 요한과 믿음의 회개로 얻은 신분을 대조하신 것일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대조는 개인들 사이의 비교가 아니라 시대를 비교한 것이다. 이제 여자가 낳은 자연적인 출생의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믿음으로 거듭나는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인 요한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리는 새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을 대조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어 거듭나는 자들은 요한보다 더 큰 자들이라고 격려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도 요한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굽신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도 요한처럼 강직하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일을 했다고 해서 천국에서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천국에서 요한보다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로 요한보다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