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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0:34-36

Dawn Word

마태복음 10:34-36

가족들에게도 거부당할 것이다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9. 23.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0:34-36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까지도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전 말씀인 32-33절은 핍박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진실된 믿음의 고백을 하면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을 진짜 하나님의 자녀 맞다고 하나님 앞에서 증언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 영광을 잃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신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핍박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사야 9:6에 보면 메시야를 평강의 왕이라 표현했다. 평화를 가져오는 통치자라는 뜻이다. 이사야 11장 6-9절에도 메시야가 임할 때의 평화를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메시야가 오면 이루어질 완전한 평화를 그림처럼 묘사한 것이다. 제자들이나 메시야를 기다리는 모든 유대인들은 이러한 평화를 가져오는 메시야를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 말씀 34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생각지 말라는 말은 제자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면 주변나라를 모두 정복하고 자신들은 평화를 누리며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평화는 자신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평화이다. 그러나 반대로 주변나라는 반대로 압제와 고통을 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구약에 묘사된 평화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실로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마태복음 5:9절의 화평케하는 자도 역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처럼 진정한 평화를 주러 오신 화해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앞에 있는 마태복음 10:16-23에서는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제자들을 대적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또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그렇게 대적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제 종교지도자나 정치 지도자 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제자들을 대적할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고 나서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지만 사람들이 대적하기 때문에 결국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영적 전쟁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전쟁이니 것이다. 여기서 검이나 칼로 번역한 말은 "막사이라(μάχαιρα)"인데 서로 뒤엉겨 붙어 싸우는 전투에서 쓰이는 짧고 끝이 휘여진 칼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서로 떨어져서 싸울 때 쓰이던 로마 군병들의 장검은 "롬파이아(ῥομφαία)"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장검을 말씀하시지 않고 짧은 칼을 뜻하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하며 한 손에 짧은 칼을 들고 온 힘 다해 싸우는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짧은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 것이다.

원어에는 35절 맨 앞에 “왜냐하면” 이란 말이 있다. 왜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는가 하면이란 뜻이다. 35절은 미가 7:6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미가 7장은 신실한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 나온다. 세상이 타락하다 못해 가장 가깝고 믿을만한 관계인 가족조차도 서로 못 믿게 될 만큼 타락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가족끼리 맞서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해서 가족조차도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대적한다는 것이다. 개역에는 불화하게 하려고 라고 했는데 이는 원래 칼로 쳐서 둘로 나눈다는 말에서 온 말이다. 가족 간의 유대는 어떤 조직보다도 강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한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하나였던 가족이 예수님 때문에 둘로 쪼개진다는 것이다.

맞서는 대상은 첫째로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선다고 했다. 사람이란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고대 사본들에는 아들이라고 기록된 것도 있다. 두번째는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선다는 것이다. 또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맞선다는 것이다. 사위와 장모의 관계가 없는 것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가족 관계를 다 예로 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고 선포하는 것 때문에 이처럼 가족끼리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36절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 라고 하며 35절을 요약하고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메시야라 믿고 선포하는 것 때문에 원수가 된다는 것은 개인 중심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고대 근동 사람들은 그룹 중심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오늘날 아프리카나 중동지방이나 인도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룹중심의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개인이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 혼자서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공동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가족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압력이 두려워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죽이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까지도 핍박을 받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까지 핍박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전하면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까지도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각오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은 이처럼 큰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까지도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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