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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0:33

Dawn Word

마태복음 10:33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9. 22.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0:33 세상 영광을 잃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부인하면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예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제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인 32절은 핍박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진실된 믿음의 고백을 하라. 그러면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을 진짜 하나님의 자녀 맞다고 하나님 앞에서 증언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반대로 부인하는 사람들을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대하실지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33절은 32절과 거의 똑같다. 다른 것은 시인한다가 부인한다로 바뀐 것 뿐이다. 부인한다는 말은 시인한다의 반대말인데 사람들 앞에서 강하게 부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큰 소리로 “아니야” 라고 소리치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8:38에서는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라고 했다.

마태는 말로 표현한 부끄러움을 말한 것이고 마가는 표정과 행동으로 표현한 부끄러움을 말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도 바로 강하게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말로 강하게 “아니야” 라고 소리치는 것과 표정과 행동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모두가 다 부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6:24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인 베드로가 세번이나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다. 실제로 베드로는 자신도 잡혀 죽을까 두려워 세번이나 부인했다. 죄수로 잡혀 있는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고 주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한 것이다. 그래서 모른다라고 세번이나 강하게 부인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사람은 완전한 불신자가 아니라 제자들 중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편안할 때는 믿는다고 말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이나 말씀 때문에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많은 손실이 생기게 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경우는 모른다 라고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2:42에도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요한은 “지도자들 가운데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으나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나 관원이라고 번역된 말은 유대인들 중에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을 말한다. 존경받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으나 바리새파 사람들이 두려워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을 연구해서 철저히 지킴으로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인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을 이끌던 종교적 지도자들 그룹이다. 당시 세상에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의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친자 확인 검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저들을 두려워한 것이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믿는다는 제자들이 이런 사이비 친자확인 검사관들의 눈치를 볼 것을 걱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모른다 라고 부인하는 경우를 미리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어 요한은 43절에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다” 라고 짧게 한마디 덧붙여 놓았다.

하지만 제자들은 세상 영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참고 견디며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디모데후서 2:12절에서 “우리가 참고 견디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요” 라고 했다. 여기서 싸움이란 단어는 레슬링하는 것을 말하는 단어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레슬링을 하듯 온 힘 다해 견디면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올림픽 경기나 이수미안 게임에서 선수들은 벌거벗고 레슬링을 했다. 레슬링 선수들이 견디는 것은 힘이 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끄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모두 옷을 입고 구경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도 힘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벌거벗고 있고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옷 입고 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면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다 보니 벌거벗고 사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벌거벗고 레슬링을 하듯 온 힘 다해 참고 견디며 그리스도를 이 땅에서 증거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함께 왕 노릇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관원들은 세상에서 이미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의 영광을 놓치게 될까 염려하여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며 부인한 것이다.

세상에서 이처럼 그리스도를 부인해 놓고는 하나님 앞에 와서는 뻔뻔하게 “아버지, 저예요 아들이예요”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누가 진짜인지 예수님식의 친자 감별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인 인척 하지만 음란한 세상 속에서는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가짜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진짜 아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가짜 자녀들 이야기가 마태복음 7:22-23에도 나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왜 이렇게 주장할까?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세상에서 누리던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도 누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자녀행세를 하는 것이다. 요즘 친자 확인소송이나 DNA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대부분 아버지가 유명한 정치인이거나 아니면 재산이 많은 경우에 주로 소송이 들어온다. 무일푼의 노인이나 노숙자를 진짜아버지라고 소송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때로는 가짜를 진짜라고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서는 대부분 돈을 노리고 소송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고 또 성도들 앞에서는 거룩한척하는 것이 통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이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떤 DNA 검사보다도 정확하게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가려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사이에 양다리 걸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세상에서 살면서 영광도 누리고 싶고 또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영광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가지를 다 얻을 수 있는 중간지대는 없다. 이는 마치 이 남자는 돈이 많아서 사랑하고 저 남자는 마음씨가 좋아서 사랑하니 둘 다 남편으로 삼겠다는 여자와도 같은 것이다. 중간지대에 설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 편인지 세상 편인지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 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증거하도록 하자. 그래서 하나님의 친자 확인검사를 당당하게 통과하고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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