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16-18 복음을 전하다가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슬기롭게 피해야 하지만 속임수는 쓰지 말아야 한다며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증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은 가까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따로 여행 준비를 하지 말고 그냥 떠나서 영접하는 사람들 집에 머물고 만약 영접하지 않으면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라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영접하지 않는 적대적인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 부하 장군 중 한명이 세운 Selucid왕조가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시리아 지역을 다스렸다. 그런데 기원전 167년 유다 마카비라는 사람이 Selucid왕조가 약해진 틈을 타 게릴라전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되찾고 약 백년간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그 뒤 로마제국의 Pompey가 기원전 63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마카비가 바로 오랫동안 기다리던 다윗과 같은 메시야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말씀 16절은 “보아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글 성경에서 이말은 번역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인데 여기서는 원어대로 분명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은 “정신차리고 똑바로 잘 들어라!”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가르치신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 매우 중요하니 귀를 털고 잘 들으라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파송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유다 마카비처럼 게릴라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제자들을 적진에 파송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르치신 것이 오늘 말씀이다.
이제 이리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제자들에게 두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하신다. 하나는 뱀처럼 슬기로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둘기와 같이 순진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두가지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 명령일 것이다. 이리떼 가운데서 살아남으려면 뱀처럼 슬기로워야 하는데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뱀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주 영리하면서도 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비둘기처럼 순진해야 한다니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이는 뱀과 같이 지혜롭되 그 중에서 부정적인 면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혜롭되 가면을 쓰고 속임수를 쓰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뱀과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령하신 것은 17절에 나오는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이다. 왜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일까? 17절 뒷부분에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것이다” 라고 나와있다. 법정이라고 새번역에 번역된 말은 개역에서는 공회라고 되어 있다. 원어는 산헤드린이란 뜻인데 예루살렘의 산혜드린 공회가 아니고 갈릴리 지방의 산헤드린 공회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그들의 회당은 역시 유대인들의 회당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때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18절에서는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나간다고 되어 있다. 산헤드린과 회당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리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사법권이 없었다. 그래서 산헤드린과 회당에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을 총독과 임금들에게 끌고 간다는 것이다. 총독이란 로마제국에서 파견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관리일 것이다. 왕들이란 대 헤롯의 세 아들들일 것이다. 대 헤롯은 세 아들에게 이스라엘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했다. 헤롯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이다. 제자들은 또 이방인 정치 지도자들에게 끌려가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18절 끝부분의 그들이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고 이방인들이란 총독과 왕들인 이방인 정치지도자들이다. 그들에게 끌려가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다. 예수님 때문에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이방인 정치지도자들에게 증언한다는 것이다.
14-15절에서는 반대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핍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와는 달리 16-18절은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1:1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지시하기를 마치고” 라는 내용이 있기에 11:1절까지 전부가 다 첫번째 전도실습에 관한 내용이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전도실습차 내보내시면서 적극적인 반대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실습은 실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이 독립해서 전도를 할 때를 생각하시면서 그 때에 있을 일까지 말씀해주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도 어딜가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권위가 없었기에 훨씬 더 심각한 반대에 직면할 것을 미리 아시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어떻게 지혜로우면서도 순결할 수 있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알려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성령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적대하는 세상을 향해 나갈 때는 성령님을 모시고 나가서 성령님께서 알려주시는 말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바울도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도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담대히 말했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할 때 지혜로우라는 것은 충돌을 피하고 달아나라는 뜻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며 싸우는 것은 지혜로우라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충돌을 피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해야 할 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담대히 말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