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5-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 실습을 시키고자 이방인의 길로 멀리 가지 말고 사마리아 땅 안으로 들어가지도 말고 갈릴리 안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혀 공동체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내셨다. 열 두 제자들은 어부출신과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로 네 명씩 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전도 실습차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주신 첫번째 지침이 나온다.
예수께서 전도실습차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주신 첫번째 지침은 5-6절에 나와 있다. 5-6절은 세개의 명령형 동사로 되어 있는데 모두 가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세단어가 모두 다르다. 먼저 “이방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에서 가라는 말에는 "멀리" 라는 뜻의 apo 가 붙어 있다. 따라서 첫번째 가라는 명령어는 이방인의 길로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곳은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이다. 가버나움에서 이방인의 길로 가는 것은 첨부한 지도에서 파란 색 화살표로 표시된 길이다. 똑바로 동쪽으로 가는 것과 북쪽으로 가다가 서쪽이나 동북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 두 길만이 이방인의 땅으로 멀리 가는 길이다. 물론 거리가 멀어서 멀리 가지 말라고도 한 것이지만 서로 통하지 않으니 멀기도 한 것이다.
두번째 명령어는 “사마리아 사람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는 말은 멀리 가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여기서 가라는 말은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마리아인의 도시들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가버나움에서 나가는 길은 세 갈래인데 동쪽과 북쪽은 모두 이방인의 길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 하나는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된 남서쪽으로 뻗은 길 뿐이다. 이 길은 사마리아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방인들의 길로도 멀리 가지 말고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지도 말라고 하신 것은 갈릴리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이다.
세번째 명령어는 6절의 “오히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라” 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이스라엘” 보다는 “긿 잃은” 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쪽의 예루살렘과 그 주위의 유다 지방을 가려면 반드시 이방인의 땅이나 사마리아인의 땅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 세가지 명령어는 갈릴리 지방에서만 전도하라는 것이다. 갈릴리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그 중에 길 잃은 양 떼에게 가라는 것이다.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 모든 이방사람이나 사마리아 사람이나 남쪽의 유대사람은 구원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그건 절대로 아니다.
예수님의 뜻은 9:37절의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추수할 것이란 9:36절의 “목자 없는 양"이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메시야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메시야가 나타나길 더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은 갈릴리에 살던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무시당하고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갈릴리에도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 중에도 죄인으로 낙인 찍혀 공동체에서 쫓겨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잃은 양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그들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 만이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기에 예수님 앞에 엎드리던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던 곳이 갈릴리였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익은 곡식이고 추수할 곡식들인 것이다.
우리도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렸을 것이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존재들이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편안하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기가 잘나서 잘 사는 줄 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익지 않은 곡식이다. 익은 곡식들은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겸손히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지 말라는 것은 그들은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뜻이다. 낫 주고 밭에 가서 익은 보리를 베어오라고 했는데 새파란 청보리를 베어왔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칭찬받지 못한다. 익지 않은 보리는 알곡이 될 수 없고 저장도 안되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다.
바울도 선교하러 다닐 때 먼저 유대인 회당에 가서 “여러분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라고 묻고 “그분이 바로 너희들이 죽인 예수다” 전파했던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이 전해지면 그 다음에는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1:16에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익은 곡식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거절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실망할 필요 없다. 아직 익지 않은 청보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특별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도움을 주고 위로해 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먼저 무르익은 곡식을 수확해야 한다. 거절한 사람들은 아직 익지 않은 곡식이니 익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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