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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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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2-4

열 두 명의 제자들의 구성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9. 7.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0:2-4 열 두 명의 제자들의 구성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내셨다. 열 두 제자들은 어부출신과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로 네 명씩 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 두 명은 원래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단순히 혈통적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들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소수의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이삭만이 남은 자였고 이삭의 후손 중엔 야곱만이 남은 자였다. 바벨론 포로 때 잡혀간 포로들이 모두 다 돌아온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만이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돌아온 소수만이 남은 자였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 소수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을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개혁을 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열 둘이라는 숫자는 이처럼 마지막 때까지 남아있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이들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모든 민족 모든 계층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한글성경에는 분명하지 않지만 원문에 보면 열 두 명은 2명씩 짝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6:7절에 보면 마가는 “열 두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라고 했다. 누가복음 10:1에도 70인을 파송할 때 둘씩 짝지어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는 두 명씩 짝지어 파송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름 자체를 둘씩 짝지어 기록함으로 둘씩 짝지어 파송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 짝을 보면 형제들은 형제들끼리 짝 지어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나 친한 친구들끼리 짝 지어주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짝이 있어야 한다. 함께 신앙을 나누고 함께 전도할 수 있는 짝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을 전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두사람이 짝을 이루어 한사람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삶을 나눈다면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다.

열 두 제자중 첫째는 베드로이다. 특별히 2절에 보면 베드로의 이름 앞에만 “첫째로” 라는 말이 붙어 있다. 이는 열 두 제자들 중에 가장 으뜸인 제자란 뜻이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이름들과 순서들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지어 주신 것 말고도 또 다른 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의 이름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모두 비교해보면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중에 첫번째는 항상 베드로이고 5번째는 항상 빌립 9번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마지막은 항상 예수님을 판 유다이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첫번째는 베드로가 으뜸가는 제자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가 맨 끝에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째서 빌립은 항상 5번째이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항상 9번째일까요?

이는 열 두 이라는 숫자들 가운데 첫번째 다섯번째 아홉번째가 어떤 위치인지 생각해보면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둘씩 짝지었을 뿐 아니라 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그룹 세 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첫번째 그룹은 어부 출신 제자들이다. 이들은 두 쌍의 형제들로 되어 있다.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또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다. 베드로는 이 첫번째 그룹의 리더일 뿐 아니라 전체 제자들의 대표이다. 이들은 모두 어부출신이다.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는 가난한 어부출신이다.

하지만 베드로와 안드레와는 달리 야고보와 요한은 많은 종들을 두고 어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예수를 섬겼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 마가복음 10:35-37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청했다. 마태복음 20:20에 보면 그의 어머니도 역시 같은 청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기에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자리에 서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은 또 성격이 불같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항상 떠받들어주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사람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누가복음 9:52-54에 보면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지 않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라고 할까요?” 라고 말했다. 항상 대접받던 이들은 거부당하고 무시당하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가복음 3:17에 보면 예수님은 이들에게 “보아너게” 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이는 우뢰의 아들, 곧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불같았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처럼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야고보 요한 형제들 중에 으뜸가는 제자를 택하지 않고 가난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를 으뜸으로 삼으셨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겸손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어부들 중에도 서로 다른 제자들을 한 그룹에 묶어 놓으신 것은 전도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상당수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첫번째 그룹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구성되었을 것이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난한 어부들과 접촉점이 있었을 것이고 야고보와 요한은 부유한 어부들에게 접촉점이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그룹은 헬라파 유대인 제자들이다. 두번째 그룹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빌립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항상 빌립이 다섯번 째로 나온다. 빌립은 두번째 그룹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빌립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식 이름이다. 빌립은 그리스어에 능통한 그리스화된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두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화된 유대인들 중에 지식인들이었을 것이다.

빌립은 그리스의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받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6:7에 보면 예수께서 수많은 무리를 먹일 방법을 묻자 금방 200데나리온도 부족할 것이라고 즉석에서 계산을 끝냈다. 또 요한복음 14:8절에 보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라고 했다. 이는 그리스 문화에 젖어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그리스화된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요한복음 12:20절에 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빌립에게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빌립이 그리스어에 능통했기에 빌립에게 와서 부탁한 것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해서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사람과도 같다. 미국인들이 한국어만 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면 미국에서 성장해서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에게 와서 부탁을 하겠지요. 빌립은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리스어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의 공용어였고 로마제국의 상류층들도 모두 그리스어와 문화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빌립과 짝을 이룬 사람은 바돌로매이다. 바돌로매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돌로매는 요한복음 1:45-51에 나오는 나다나엘의 다른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다나엘은 빌립과 친한 친구이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가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언을 했다. 나다나엘도 빌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화된 유대인일 것이다. 나다나엘도 논리적인 사람이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수 있겠나?" 라고 말했다. 아마도 나사렛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동네였던 것 같다. 통계적으로 볼 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빌립의 그룹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은 도마이다. 도마도 역시 논리적인 사람이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모두가 말하자 도마는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내 손가락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도마 역시 빌립과 나다나엘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식 교육과 문화의 영향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녔던 사람이다.

이 그룹에 속한 마지막 사람은 마태이다. 세리는 당시 로마제국에 고용된 세금 징수원이다. 로마인들은 자신들과 같이 그리스어를 잘 쓰는 마태를 고용해서 세금을 걷게 했을 것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 유학을 갔다와서 관리가 되어 일본인을 위해 일했던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동포 유대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난과 멸시를 받았던 사람이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화된 유대인들이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상당수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특히 이스라엘을 떠나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그리스화된 유대인들이다. 사도행전 6:1의 헬라파 유대인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당시 많은 수를 차지했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고 이들 네 명은 한 그룹으로 있었다.

세번째 그룹은 히브리파 유대인 제자들이다. 세번째 그룹의 리더는 아홉 번 째에 나오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없어서 알 수 없다. 10번째 나오는 다대오라는 이름은 누가복음에는 없다. 아마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일 것이다. 열 두 번째 나오는 가룟 유다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이름을 썼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시몬 베드로처럼 다른 이름들을 갖고 있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 두사람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1번째 나오는 시몬과 마지막의 유다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시몬은 새번역에는 열혈당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개역에는 열심당 이라고 되어 있다. 결국 같은 말이다. 개역개정에는 가나나인이라고 원어를 그대로 음역해서 썼다. 아마도 열심당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나나이오스"라는 말을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그대로 쓴 것 같다. 가나나이오스란 당시 사람들이 쓰던 열심당이란 뜻의 아람어를 그리스어로 소리나는대로 쓴 것이다.

열심당이란 당시 로마제국에 무력으로 항쟁하던 유대인 독립투사들을 가리킨다. AD 70년 경에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유대-로마 전쟁 때 이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기에 한 말일 뿐이고 예수님 당시에는 없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헬라파 유대인이 아니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다. 로마제국 정부에 반대하여 무장하고 독립투쟁을 벌이던 사람들로서 로마정부에 협력하던 세리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제자는 가룟사람 유다이다. 원어는 이스카리오테스 인데 이스는 사람이란 뜻이므로 카리옷 사람이란 뜻이다. 카리옷은 유대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따라서 유다만이 유대 남쪽 출신이다. 다른 제자들은 마치 모두 함경도 사람과 같다면 유다는 부산사람정도 된다고 할까요? 아마도 유다는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유다도 상당히 지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제자들 중에 회계를 맡았었고 돈에 계산이 무척 빨랐던 사람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시몬도 지식층이었을 것이다.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열심당 시몬과 가룟사람 유다로 보아 마지막 그룹은 히브리파 유대인들 중에 지식층이었을거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열 두 명의 제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당시 다양한 사회계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제자들로 부르신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사회적으로 같은 계층 사람들만 모이면 안된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계층이 모여 완전히 뒤섞여야만 한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룹들이 배타적인 그룹이 되면 안된다. 서로 다른 그룹들 끼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전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 왔을 때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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