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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9:36

Dawn Word

마태복음 9:36

모두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9. 3.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9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9:36 예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이 물어 뜯겨 지쳐 쓰러져 죽어가는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는 본을 보이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어진다. 제자 훈련의 핵심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마태복음에도 여러번 나온다. 이 말의 원래 뜻은 내장이 끊어지는 것같다는 뜻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다. 마치 추운 겨울날 맨발로 길거리를 방황하는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14:14에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모여든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다. 15:32에서도 4000명 먹인 기적 이야기에서 무리들을 보고 가엾다고 하셨는데 역시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이다. 20:34에서는 소경 둘이 소리지르는 것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다. 이 세가지 이야기는 모두 먹을 것이 없거나 병든 자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또 누가복음 7:13에는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아들의 시체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신 모습이 나온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그냥 혀를 끌끌차며 "참 안됐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하실 때 대부분 손으로 만지셔서 치료하셨다 만지지 않고 그냥 말씀만 하시든지 하실 수 있는데도 문둥병자 소경들과 같이 더럽고 냄새나서 만지기 싫은 사람들을 만지셨고 때로는 죽은 시체까지 만지셨다. 이는 사랑의 손길인 것이다. 예수께서 손으로 만지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몸이 아파서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고 불쌍히 여긴 것이다. 몸이 아픈 것도 불쌍하지만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받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신 것은 예수님의 핵심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들을 수 있게 가르치신 복음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치료해주신 것이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시작되야 하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이유를 그림처럼 설명하고 있다.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라는 말은 그림 언어이다. 고생한다는 말은 물어 뜯겨 상처가 난 것을 뜻하는 말이다. 목자가 없기 때문에 늑대들에게 물어 뜯겨 살점이 뜯겨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새번역은 이러한 모습을 "고생에 지쳐"라고 번역했다. 기진했다는 말은 기운이 빠져 쓰러져 있는 모습을 말한다. 그래서 새번역은 "기운이 빠져"라고 번역한 것이다. 늑대에게 물어 뜯겨서 쓰러진 채 죽어가고 있는 양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에 무리들에게는 분명히 공식적인 목자가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이 바로 저들이 공식적인 목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향해 이리떼라고 책망하셨다. 저들은 사람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던 사람들에 불과했다. 저들이 지고 있던 무거운 죄의 짐을 덜어내서 대신 짊어져줘야 하는데 저들은 오히려 자기들 짐까지 더 얹어 놓고 자기들은 말로만 짐을 지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들을 향해 “화 있을진져 너희 배부른 자들아 라고 책망하셨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목자들에게 물어 뜯겨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목자가 아니라 잡아먹는 이리 떼 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할 때도 이런 자들을 사나운 이리들로 표현했다. 사도행전 20:29에서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마구 해하리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양떼의 목자와 이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36절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가 바로 그 기준이 된다. 목사도 영적으로 불쌍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목자가 아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이나 우리가 전도한 사람들을 영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목자가 아니고 이리일 뿐이다. 이리는 아픈 상처를 싸매 주고 함께 아파하며 치료해줄줄 모른다. 그냥 그 상처를 건드리고 더 물어 뜯어 죽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약점을 건드리고 물어뜯고 남에게 자녀를 험담할 부모가 있는가? 부모가 아니라 형제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말로 물어뜯고 남의 허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면 그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말로 남을 아프게 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가 아니라 남으로 취급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믿음의 한 가족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가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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