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35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는 본을 보이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시자 무리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메시야가 오셨다고 했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시기하는 마음으로 귀신들렸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에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오늘 말씀 9:35절은 마태복음 4:23절과 거의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온 갈릴리"가 “모든 도시와 마을”로 바뀐 것뿐이다. 4:23절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뒤에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이신 것이다. 4:23절 다음에는 산상수훈이라는 가르침으로 시범을 보이신 것이 이어진다. 그런데 9:35절에서는 그렇게 제자들을 데리고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신 뒤에 제자들을 파송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는 마치 교육대학 학생들의 교생실습과도 같다. 4장 23절은 마치 교육대학 2학년 학생들이 경력있는 지도교사가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을 참관만 하는 실습과도 같다. 그러나 9:23절은 이제 3-4학년 학생들의 실습과도 같다. 3-4학년 때는 지도교사의 본보기를 본 뒤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실습도 하는 것이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그대로 해 보는 실습을 하게 된다.
복음서를 자세히 관찰하며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료하신 모든 사역은 다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치료해달라고 매달려도 매정하게 돌아서서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그동안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료하신 것 중에 따로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모든 가르치심과 선포하심과 치료하심은 다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왜 그렇게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이셨을까?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치료해달라는 사람들을 그냥 무시하고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뒤에도 예수님과 똑같이 가르치고 선포하고 치유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길 바라셨던 것이다.
35절에 보면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두루 다시셨다고 했는데 이는 갈릴리에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두루 다니셨다는 뜻이다. 모든 도시와 마을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의 기록들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요셉푸스에 의하면 갈릴리에는 약 200개의 도시와 마을들이 있었다고 했다.
갈릴리는 겨우 가로로 40 마일 세로로 70마일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땅이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지역에 그렇게 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있을 수 있었을까? 요셉푸스는 또 “비옥한 토양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래서 가장 작은 곳이 15000명 이상 주민이 있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숫자는 적게 잡아도 약 300만명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부분 땅은 건조한 사막 기후 지역이다. 그런데 갈릴리는 푸른 숲과 나무로 가득 차 있는 지역이다. 신학교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갈릴리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헬몬산 자락의 시냇물이 일년 내내 흐른다고 자랑하며 엄청난 자부심을 보였다. 사실 한국에는 지리산 한 곳에만 해도 그보다 더 수량도 많은 냇물이 셀 수 없이 많다.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물이 일년 내내 계속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듯 감격해 하는 것이다. 사막 기후 지역에서 갈릴리 지역에서만 푸른 숲을 볼 수 있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산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다. 한국같이 비가 적당히 오고 어딜가나 푸른 숲과 풀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지역이나 미국의 건조한 지역에는 아주 적은 인구가 산다. 2012년 통계를 가지고 비교해 보니 인구가 가장 적은 와이오밍부터 26개주의 인구를 모두 합해야 남한의 인구가 나온다. 켄터키 주 만한 남한 땅에 미국 26개주의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과도 같은 곳이 바로 갈릴리였다.
예수님께서는 200여개 도시와 마을들을 다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료하신 것이다. 35절에서 반복되며 강조된 단어는 “모든” 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셨다. 또 온갖 질병 온갖 아픔도 원어에서는 역시 모든이라는 단어이다.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도 다 치료해 주셨다. 그렇다면 갈릴리의 모든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치료해 주신 것이다. 도시와 마을 차이는 인구의 수가 기준이 아니다. 성벽이 있으면 도시이고 성벽이 없으면 마을이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왜 갈릴리를 택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다. 갈릴리는 인구밀도가 아주 높은 지역이었다. 게다가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노예살이를 하다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약 80년동안 독립을 이루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Aristobulus라는 왕이 북부 갈릴리 지방을 점령하고 강제로 할례를 시켰다. 아무리 할례를 받았어도 그들은 반쪽 유대인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변방일 뿐 아니라 무시당하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던 지역이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한 이유는 인구 밀도가 높을 뿐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무시 당하고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쉽게 복음에 마음 문을 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서 쫓겨나고 소외된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다니시며 세가지를 하셨다고 되어 있다. 첫째는 그 지역의 회당에서 가르치신 것이다. 가르치셨다는 말은 유대교 율법인 토라를 해석하고 가르치신 것을 뜻한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온 내용이 바로 토라에 나오는 내용들을 다시 해석해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다른 유대교 랍비들처럼 율법을 해석해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다음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두번째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역시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율법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해석해서 가르치시면서 동시에 그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어지는 세번째 활동인 치료하시는 것도 토라를 재해석해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들려주신 것이라면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들을 치료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회당이란 주전 586년 바빌론 침공때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유대인들이 모여 율법을 공부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곳이다. 회당에서 성경구절의 해석은 청중들 중에 누구든지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또 여행중인 랍비나 자격을 갖춘 사람들도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특권을 사용하셔서 회당마다 다니며 전하신 것이다. 바울도 선교하러 다닐 때 이러한 예수님의 전략을 따라 지중해 연안에 있던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만 골라 다니며 그곳의 유대인 회당을 다니며 전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특정한 사회 계층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하셨다. 특히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서 쫓겨나서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나가셔서 복음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상류층들은 항상 성경말씀을 듣고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소외계층들은 더러운 죄인들이라고 공동체에서 쫓겨 났기에 들을 기회조차 박탈되었었다.
인구밀도가 아주 높고 소외된 계층들이 많이 살던 곳에 함께 사시면서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온 힘을 다하셨던 것이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선포하심과 치료하심을 보고 배운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실습하러 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들려주고 우리 삶에 나타난 놀라운 기적들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재물과 지식과 명예를 많이 갖고 있는 상류 계층보다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 한다. 소외된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는 아무런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말씀을 깨닫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여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해야 할 책임이 잇다. 먼저 실습을 마친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고 선포하고 기적을 보여줌으로 그들도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태복음 28:19-20절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