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33b-34 예수께서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시자 무리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메시야가 오셨다고 했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시기하는 마음으로 귀신들렸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귀신들린 벙어리를 치료하신 예수님 예수님께 치료를 받은 두 소경이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자 귀신이 쫓겨나고 말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여러 반응이 나온다.
33절 뒷부분에는 무리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말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자 무리들은 깜짝 놀랐다. 무리들은 “이런 것은 이스라엘에서 처음 보는 일이다” 라고 말하면서 놀라움을 표현한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마태복음 12:22-24에도 나온다. 12:23절에서 무리들은 비슷한 기적에 대해 깜짝 놀라며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라고 반응했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에서 본적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힙 입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결국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아니냐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무리들은 이러한 사인들을 보고서 놀라며 메시야가 오셨다 라고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4절에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같은 기적들을 목격하고도 “그는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라고 반응했다.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놀라운 권위있는 말씀들을 가르치시고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시자 수많은 무리들이 메시야가 오셨다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자신들을 존경하며 따라 다니던 사람들을 예수님께 다 빼앗긴 것이다. 예수님께 제자를 빼앗긴 침례요한은 요한복음 3:30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했다. 요한도 역시 서운한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들러리이고 예수님은 진짜 신랑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처럼 질투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들러리인데도 자기들이 진짜 신랑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도 그 놀라운 기적을 보았기에 기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기적 자체는 인정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적이 사실이 아니라 눈속임이라면 저들은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이 사기라고 외쳤을 것이다.
저들은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계속 자기들의 손아귀 안에 붙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기적들을 보고도 “믿지 마! 별거 아냐! 단순히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거야! 저건 절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야!” 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누가복음 6:20-26에 보면 누가 복이 있는 자이고 누가 화가 있는 자인지 말하고 있다. 놀라운 가르침을 듣고 또 기적을 보고 핍박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반대로 놀라운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화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리들 가운데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핍박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바리새파 사람들 처럼 기적을 보고도 애써 부인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화 있는 자들이다. 이는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할 때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을 그렇게 이간질 시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질투하게 만든 자는 이간질하는 자인 마귀이다. 그런데 마귀는 오늘날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귀신들렸다며 욕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기에 마귀는 전략을 바꾸었다. 그래서 오늘날 마귀에게 속은 멸망할 자들은 예수님은 한 명의 위대한 스승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냥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으며 착하고 바르게 살면 된다고 말을 한다.
만약 누구든지 예수님은 한 명의 훌륭한 스승이고 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고 바르게 살면 그만이라고 가르친다면 하나님나라로 가는 사인을 가리는 것이다. 그분이 오셔서 말씀을 들려주시고 기적을 보여주신 것은 자신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착하고 바르게 산다 해도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 길이 없다고 장애물과 도로 표지판을 설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사인들을 보고 그분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분명히 드러내 놓고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이었다며 대적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간 회색지대에 서서 예수님을 도덕 선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는 가짜 도로 표지판을 설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행을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느냐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고 영원한 멸망의 지옥을 향해 가느냐에 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이미 체험했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그리로 가면 안된다고 말해주는 도로 표지판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는 길이 사는 길이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도로 표지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