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27 죽은 소녀를 살린 집에서 나오셔서 지나가실 때 두 소경이 끝까지 따라오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사람들을 내 보내신 뒤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셔서 살리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는 죽은 소녀를 살리신 그 집에서 떠나갈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27절에 보면 “거기서 떠나가시는데” 라고 되어 있다. 거기는 바로 앞에서 죽은 소녀를 살린 유대교 지도자의 집이다. 예수께서 그 집에서 나와서 지나가는 길에 두 소경이 따라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예수님 일행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따라온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라고 소리지르며 따라 온 것이다.
얼마나 큰 소리로 소리질렀을까? 처음엔 그냥 큰 소리로 말했을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꾸를 하지 않고 길을 가시자 점점 더 크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런 대꾸도 안하시고 길을 가시는데도 계속 부르짖으며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소경이 흔하지도 않을텐데 두명이 함께 다닌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에 소경은 죄인 취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당시 사람들은 소경을 죽은 사람보다 아주 조금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쫓겨났기에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소경과 함께 어울려 다닌 것이다. 두사람은 똑같은 처지이기에 둘이서 함께 온 힘 다해 부르짖었던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절망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함께 했기에 한사람이 끝까지 따라가면서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28절에 보면 예수께서 집 안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아마도 집은 베드로네 집일 것이다.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베드로네 집에서 머무셨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집에서부터 베드로의 집까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가깝다 해도 한참동안 따라가며 계속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두 소경이 함께 소리 높여 부르짖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두 소경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무시하고 계속 길을 가셨다는 것이 흥미롭다.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실 때까지 계속 그 요청을 무시한 것이다. 그들이 집에까지 따라 들어온 뒤에야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몇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병을 치료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8:1절에서 많은 무리들이 보는 앞에서 나병환자를 치료하셨기 때문이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두번째 이유는 소경들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 때문일 수 있다. 소경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왔던 유대인들은 고통 가운데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고 주변민족을 정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줄 정치적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해석한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 내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정한 메시야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진정한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염려가 있기에 피하려는 것일 수 있다. 예수님은 치료 자체에 목적을 두신 적이 없다. 항상 믿음을 확인하거나 먼저 죄사함을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선포하려는 것이었다. 마가복음에 보면 고향사람들이 믿지 않음으로 능력을 행할 수 없었다 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능력을 행하셔야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이유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초점은 항상 제자들에게 있었다. 제자들에게 치료의 능력은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개된 장소보다는 제자들만 있는 집안이 더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저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저들이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까지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저들의 믿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28절 뒷부분에서 예수께서 소경들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저들이 함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부르짖으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혼자 부르짖어서는 안된다. 함께 부르짖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두 소경과 같이 같은 처지에서 함께 고통을 느끼며 함께 부르짖어야 한다. 함께 부르짖으며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저들이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며 부르짖은 것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9:13절에서 자비를 원한다고 하신 말씀에 맞는 것이다. 자비나 긍휼이나 불쌍히 여겨 달라는 말이나 번역된 말은 원어에서는 다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며 자랑했다. 하지만 이 두 소경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친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다.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돌아보신다는 것이다.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의 뜻에 맞게 구했다. 자비를 원하시는 예수님께 자비를 구한 것이다. 우리도 이처럼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의 공로를 내세우고 자랑하며 부르짖으면 안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함께 끝까지 부르짖으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도 같은 처지에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우리 주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아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