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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9:12-13

Dawn Word

마태복음 9:12-13

답변하시는 예수님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8. 20.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9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9:12-13 예수께서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스스로 병든 것을 인식하고 의사이신 예수님께 나오는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며 예배보다 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을 원하신다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의인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으로 정죄해서 쫓아낸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시자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비난했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이를 듣고 있던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들과 제자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직접 대답하신 내용이다.

12절에서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건강한 사람에 비유하셨고 세리와 죄인들은 병든 사람에 비유하신 것이다. 건강한 자란 아무 흠이 없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정결한 제물과도 같다. 병든 자란 병이 들었거나 흠이 있어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제물과도 같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흠이 있는 제물과도 같은 부정한 죄인들을 공동체에서 쫓아낸 것이다. 그래서 누룩이 없는 떡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실제로 건강하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자들인 것이다. 저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악하고 더러운 생각이 가득한 부정한 자들이고 두 마음을 품은 간음한 여인과도 같은 자들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병든 자란 스스로 죄인임을 인식하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병든 자들은 예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며 예수님만 의지하던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죄인됨을 인정하길 원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됨을 인정하는 자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밖에 없다며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오는 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들의 죄를 용서하셔서 치료하시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선언을 하시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죄인이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명령하셨다. 그 명령은 한글 번역에는 순서가 흩어져 있지만 원어에서는 “가서 배우라 무슨 뜻인지!”라고 먼저 나온다.

가서 배우라는 말은 유대인 랍비들이 제자들을 책망할 때 흔히 쓰던 말이다. 너희들은 한참 멀었으니 가서 더 공부하고 오라는 말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서 배워 할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이 말씀은 호세아 6:6에서 온 말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호세아서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불쌍한 이스라엘을 불러내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아주셨다. 그런데 저들이 살만하자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고 한 것이다. 이 여인이 집을 나가 몸을 팔고 있으면 호세아는 다시 가서 돈을 주고 데려와 아내의 자리를 회복시켜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로 들려주는 예언이 아닌 눈으로 보게 하는 예언의 말씀이었다. 이처럼 하나님도 고멜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역시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지금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다. 제사나 희생제사라고 번역된 말은 바리새인들이 실제 희생제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선의 제사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만 거룩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나 자비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또 이어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 의인은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데 스스로 거룩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인이란 세리와 죄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들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을 하고 자신들의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앞에서도 이런 애통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이다. 그들을 치료해 주셔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제물로 변화시키러 오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던 자들이다. 스스로 율법을 지킴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던 의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책망을 하신 것이다. 가서 배우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며 가슴을 치던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진짜로 의인이라서 예수님께서 저들을 의인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저들이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에 비꼬는 투로 말씀하신 것이다. 로마서 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다. 따라서 저들은 진짜 의인이 아니라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죄인들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여인도 나오고 창녀도 나온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인 다윗도 나오는데 그는 살인자요 간음한 자였다. Augustine은 “주여 사악한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세요.” 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던 John Knox도 “나는 내게서 타락한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라고 했다. 영국에서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John Wesley도 “내 심장은 총체적으로 타락했고 가증스러운 것 뿐이다” 라고 말했다. 영적으로 탁월했던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이와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정했던 심령이 가난한 자요 애통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부르러 오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죄인인데도 죄인인줄도 모르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은 건강하다며 의사에게 나가길 거부하는 사람과도 같다. 이런 사람들은 치료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고 집을 나간 탕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께 손을 내밀지도 않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만약 우리도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하나님 말씀 조금 더 안다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책망하며 내쫓으며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도 죽을 병에 걸린 자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착각하며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는 자와도 같다. 자신의 죄를 먼저 바라보고 애통하면서 예수님 말고는 치료 받을 길이 없다고 예수님께만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치료를 받은 뒤 자신과 같은 죄인들을 보고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런 죄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나가 이 사람들도 치료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의원이신 예수님이 쓸데가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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