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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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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태복음 9:9-10

예수님을 영접한 죄인들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8. 18.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9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9:9-10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자 마태는 감격하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죄인인 친구들을 초청하여 예수님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친구들과 함께 받은 감격을 나누었다.

이전 말씀에서 무리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 않고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여겼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이러한 무리들과는 달리 예수께서 죄인인 세리 마태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겠다고 하시자 마태는 죄인인 친구들을 초대하여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장면이다.

9절에서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한 사람을 보았다. 그의 이름은 마태인데 세관에 앉아 세금을 걷는 세리였다. 예수께서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에게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깜짝 놀랐을 사건이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더러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로마제국 관리들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세금을 걷게 했다. 세리들은 원수인 로마제국에 협조하여 동족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수확한 곡식의 1/10을 내게 했고 과일과 포도주는 수확의 1/5을 내도록 했다.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사람에게도 잡은 고기의 양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이 밖에도 세리는 뭐든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거둘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세금들은 현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현지인들을 고용해서 세금을 걷게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악용해서 부를 축적했다. 실제 로마제국에 바칠 세금보다 더 많이 징수하여 자기 몫을 챙겼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세리를 상종 못할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했다.

이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상종 못할 죄인과 함께하면 그 사람도 역시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마태의 입장에서도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언제든지 다시 어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태의 경우는 한번 그만두면 다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비록 욕은 먹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에게 따라오라고 부르시자 마태는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마태는 아마도 예수께서 산에서 가르친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또 목격자들에게 전해듣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동경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따라갈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태는 후에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다. 따라서 마태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 이기 때문에 겸손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누가복음 5:28에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제자들 중에 가장 큰 댓가를 치르고 제자가 된 사람일 것이다.

마태가 자신이 포기한 것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았다. 반대로 마태의 가슴에는 기쁨이 흘러 넘쳤을 것이다. 이러한 마태의 기쁨을 10절에서 찾을 수 있다. 10절에 보면 원어에서는 "예수께서 그 집에 누우셨다" 라고 되어 있다. 물론 눕는다는 말은 식탁을 앞에 두고 비스듬히 누우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앉아서 음식 잡수신다고 의역한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자로 삼아 주신 것에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예수님을 집에 모셔 놓고 마태는 나가서 수많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받은 감격을 나누었을 것이다.

원어에는 10절의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란 말 앞에 “보라” 란 감탄사가 들어있다. 역시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 구경거리는 수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마태는 다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죄인으로 멸시 받고 쫓겨났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처럼 쫓겨난 다른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지낸 것이다. 죄인인 자신을 예수께서 받아 주시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죄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는 그 감격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이다. 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마태의 초대를 받고 온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자리를 함께 했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저들의 마음에도 마태처럼 기쁨이 흘러 넘쳤을 것이다. 아무도 더럽다고 상종을 안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저들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같은 신앙의 공동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회복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감격에 벅차 있는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다. 저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서게 된다. 만약 우리가 마태복음 8-9장의 내용으로 된 영화를 본다면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편에 서지 않고 자동적 세리와 죄인들의 편에 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내가 과연 바리새파 사람인지 아니면 세리와 같은 사람인지를 특히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거룩한 삶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일 수록 바리새파 사람들이기 쉽다. 마태냐 바리새인이냐의 가장 큰 차이는 거룩한 삶을 사느냐 살지 않느냐가 아니다. 만약 자신은 믿음의 사람으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은 비판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혼자서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고 있으면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분명 바리새파 사람이다. 만약 자신처럼 거룩한 사람들만 골라 사귀려고 했다면 분명 바리새파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직면하고 죄인을 불러 주신 주님께 감격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리 마태이다. 만약 우리가 세리 마태라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들을 초청하여 주님을 만나게 하고 싶은 감격이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마태라면 함께 나누고 싶고 그들도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게 하고 싶은 감격이 있어야 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거룩이 아니라 감격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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