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4 가장 먼저 제사장에게 보이고 깨끗해진 것을 입증 받으라 치료하신 후에 예수께서 나병환자에게 하신 명령들이 8:4절이다. 첫번째 명령은 직역하면 “보라”라는 말인데 한글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실제로 눈으로 보라는 뜻이 아니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왜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문둥병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문둥병자가 그냥 지나가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문둥병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계속 말을 시키면서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족들이 치료받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궁금했겠지만 그들에게 대답해주는 것이 급선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도 대꾸하지 말고 입 꾹 다물고 곧 바로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 다음 명령이다. 이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 따르면 아무리 병이 나았다 해도 그냥 돌아갈 수 없다. 반드시 레위기 13-14장에 기록된 절차에 따라 제사장에게 공증을 받고 예물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나서도 칠일간 진 밖에 머물러야만 다시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사람은 의학적으로는 치료된 상태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나 제의적으로는 회복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은 하루 빨리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가서 마음껏 포옹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그동안 사람들에게서 소외되었던 아픔을 치료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아시고 입 꾹 다물고 곧장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나병환자에게 깨끗함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 분이 직접 선포했으니 제사장에게 공증을 받는 절차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인정받는 절차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치료되었음을 인정받고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다.
이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치료하신 예수님을 증거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격리되어 있던 동료 나병환자들에게도 치유받을 길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이 나병환자는 후에 상처를 입은 치유자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큰 상처를 갖고 있었고 치유받은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었을 것이다. 나병환자처럼 썩어가고 맛을 잃은 세상에 가서 자신이 소금이 되어 맛을 내었을 것이다.
우리가 신앙 공동체로 돌아가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예배와 간증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 본문 바로 이전 장면인 마태복음 5:23-24 절에서 예수께서는 “예물을 제단에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상처를 치료받고 새사람이 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먼저 신앙 공동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8:2-4절을 세번에 걸쳐 나누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고 적용점을 찾아 보도록 하자. 예수님은 나병환자와 같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다. 오늘 본문에 나온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모든 무리들의 죄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그 무리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상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병에 걸린 것과도 같다. 죄에 빠져있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죄를 범하면서도 죄인줄 모르고 산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깊어지면 죄에 대한 감각도 점점 없어진다. 마치 손발이 떨어져 나가고 머리털이 다 빠지고 눈이 멀기 시작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병환자와도 같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전혀 희망이 없다 자력으로 죄에서 탈출할 길도 없다.
예수님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러한 나병환자와도 같았다. 제사장이건 율법교사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건 모두 다 나병환자처럼 죄로 썩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병 초기 환자와 같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깨닫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썩은 모습을 보고 골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들은 자기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를 보고 더럽다며 골라내서 내 버리린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골라내지 않으시고 치료해주셨다. 거룩하신 분이 자신도 나병환자들과 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자신도 우리와 같이 상처로 아픔을 느끼셨다. 그러면서 상처입은 죄인들을 치료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4:15절은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헨리 나우엔이 이러한 예수님을 묵상하고 '상처입은 치유자' 란 책을 썼다. 교회 지도자들도 예수님을 닮은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란 상처입은 사람들이란 것이다. 스스로 상처를 입었으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함께 느끼고 치유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 예수님처럼 스스로 몸에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절대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영적 교만에 빠져 상처입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골라내는 역할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떻게 예수님처럼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을까?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먼저 내 상처를 치료받아야 한다. 내가 먼저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치료받도록 인도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렸던 나병환자처럼 예수님의 능력에 맡기고 엎드려야 한다. 예수님이 아니면 이제 아무런 소망도 없다며 애통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엎드려야 한다.
엎드린 뒤에 예수님의 어루만지시는 사랑의 손길과 능력의 말씀을 통해 치유받았다면 교회 공동체들과 관계를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 치유받은 수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공동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우리를 치료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을 증거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의 능력으로 다른 상처받은 죄인들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자신의 상처를 볼 줄 모르면 남의 상처를 보고 아파할 수 없다.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면 남의 상처를 보고 더럽고 추하다고 밀쳐내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함을 받아서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