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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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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태복음 8:5-7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간청하던 백부장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7. 29.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8:5-7 예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가축처럼 취급하던 종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던 백부장의 이웃사랑의 마음을 보시고 놀라 직접 가서 치료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행하신 첫번째 기적은 더러운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 주신 것이었다. 두번째 기적도 역시 유대인들이 더럽게 여기던 사람을 치료하신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더럽다고 혐오하며 경계선을 긋고 상종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유대인들이 더럽게 여기는 철천지 원수인 로마군대 백부장을 사랑하신 것이다. 5:43-48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을 예수님 자신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백부장은 사병들 중에서 승진한 장교들이고 퇴역하면 기사계급을 얻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로마군대의 기초 단위인 백인대를 직접 지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로마제국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은 이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원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은 대단한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보면 로마인인 백부장이 유대인인 예수께 와서 간청을 한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6절에 보면 백부장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아닌 종을 위해 간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종이란 자녀를 기리킨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은 가족을 데리고 근무지에 갈 수 없었다. 허용되는 것은 오직 심부름을 할 종 뿐이었다. 한 곳에 오래 주둔하게 두지도 않고 자주 다른 곳으로 전출을 시켰다. 한 곳에 오래 근무하게 되면 현지에서 첩을 얻게 되고 첩들이 간첩으로 활동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이라는 말이 아들을 뜻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그렇다면 종의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살려 달라고 간청을 했을까? 이를 확인하려면 당시 종의 가격을 알아보면 된다. 당시 종은 로마 사병 연봉의 1/3정도면 살 수 있었다. 일년 연봉으로 세명의 종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부장의 연봉은 사병들의 15배였으므로 백부장은 일년 연봉으로 45명의 종을 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 상의 큰 손실을 입을까 걱정하여 종을 고쳐 달라고 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당시 로마인들은 종들의 인권을 이렇게 존중했기 때문일까? 27 BC에 사망한 Varro 라는 로마인 작가의 글이 남아있다. Varro는 노예와 가축과 수레의 차이는 없다고 했다. 노예가 다른 재산들과 차이가 있다면 말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실제 당시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를 가축이나 가축만도 못하게 취급하던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로마의 백부장은 종의 인권을 생각해서 그렇게 고쳐 달라고 간청했을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이 백부장이 자신의 어린 종이 몹시 괴로워한다며 치료해달라고 간청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5:7에 나오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새번역에서는 자비 라고 번역한 마음이다. 이 백부장은 가축만도 못한 어린 종을 긍휼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비록 종이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고 유대인인 예수께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아무리 종이라도 사람인데 불쌍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애완견이라도 죽게 생겼으면 불쌍히 여겨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치료해주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종은 오늘날 애완견과 비교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일반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이나 그보다도 못하게 여겼던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백부장은 바로 예수께서 앞에서 가르치신대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던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백부장의 태도에 예수님께서는 정말 크게 놀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사역은 대부분 유대인들 대상이었다. 마가복음 7:26절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치료해 달라고 했을 때 거절하셨다가 말로만 치료해 주셨고 가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오늘 본문 7절에서는 거절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내가 가서 고쳐주마”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백부장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으신 것이 틀림없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감동이 되셨을까? 마태복음 22:35-40에 보면 한 율법사가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냐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요약해 주셨다. 마태복음 5장에서 가르치신 여덟가지 복이 있는 사람도 처음 넷은 하나님 사랑이고 다음 넷은 이웃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이 백부장은 가축만도 못하게 여기던 종을 이웃으로 보고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던 것이다. 백부장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기에 크게 놀라시고 감동을 받으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백부장과 같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우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이 백부장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짐승만도 못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우리가 원수로 여기는 사람들까지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만약 말로는 원수를 사랑한다면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지만 실제로는 미워한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그렇게도 책망하시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은 위선자들이다. 우리도 백부장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예수님 앞에 나가 그들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도록 하자. 아직 그렇게 안된다면 그런 마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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