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2 나병환자는 예수님 밖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모든 것을 예수님께 다 맡겼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학자들과 전혀 달랐기에 듣던 무리들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율법학자들의 해석은 더러운 죄인들을 밀쳐내는 해석이었지만 예수님의 해석은 죄인들의 죄를 씻겨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해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8:1절에서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에게 쫓겨난 무리들이 감동을 받고 흥분이 된 채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8:2절에서는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지금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내려오고 있던 더러운 죄인들의 무리들보다 훨씬 더 더럽게 여겨지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오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오면 돌에 맞아 죽는 사람이었다. 그는 산 밑에 숨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멀리서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이다.
나병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나병환자는 죄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나병환자는 병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팔을 더러운 헝겊으로 감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문에는 "야! 저것좀 봐!” 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병환자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나병환자의 용기를 발견할수 있다.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면 영원히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예수님 앞에 나선 것이다. 마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며 왕 앞에 나서던 각오와도 같았던 것이다. 이런 각오로 하나님 앞에 나설 때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두번째로 “절하며” 라는 말을 통해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를 볼 수 있다. 절하며 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주로 경배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예수님의 발 앞에 납작 엎드려 자기를 낮추며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주께 문제를 가지고 나갈 때 납작 엎드려 예수님만 높이고 우리는 낮추어야 한다.
세번째 “주여 원하시면" 이란 말을 통해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직접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흔히 우리가 미리 답을 정해놓고 기도할 때가 있지만 본문에서 나병환자는 주님께 전적으로 맡겼다. 우리가 답을 다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네번째로 주님의 능력을 믿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주실 수 있다” 는 말은 주님의 능력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나병이 깨끗하게 치료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나병환자는 주님의 능력을 굳게 믿었다. 우리도 역시 주님 앞에 기도 제목을 갖고 나오면서 주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이 모습을 보며 듣고 있던 무리들은 나병환자의 간청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의 용기에 놀랐을 것이고 예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 엎드리는 모습을 보고도 놀랐을 것이다. 또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기보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에 맡기는 모습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산위에서 무리들에게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은 이 나병환자를 통해 참된 하나님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 밖에는 아무것도 희망이 없다는 영과 육의 파산자였던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보다도 마음이 가난한 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어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엎드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