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6 위선적인 태도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만 개돼지는 분별하여 개돼지들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말라 7:1-5절은 먼저 자신을 돌아 본 후에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6절은 앞의 말씀과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의 말에 이어지는 말이다. 위선적인 태도로 남의 판단을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지만 개돼지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것은 원래 구약시대에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을 뜻한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 앞에 드렸던 희생제물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희생제물이 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룩한 제물에 비유한 것이다. 진주도 역시 값진 보물인데 보물에 관한 비유는 바로 앞의 6:19-21에 나온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수많은 율법을 지킨 것과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진주로 여겼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처럼 진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진주는 거룩한 제물인 예수님 말씀을 따라 진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넓게 보면 주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고 희생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신 모든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다. 또 좁은 의미로는 바로 앞에 나온 5절 말씀의 가르침에 나오는 먼저 자신을 심판하고 회개한 후에 남을 심판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개 돼지는 누구를 가리킬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개 돼지”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아보고 경배하도록 지음 받았는데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개돼지와 같다고 해서 개돼지로 부른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말로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제 멋대로 왜곡시켜 가르치고 진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죽이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인 무리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는 또 예수를 따르는 척하면서 믿는 자들을 해치는 거짓선지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15-20 말씀에 나오는 거짓선지자들도 역시 개 돼지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함부로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감으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켜 자신들을 거룩하게 보이는 데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해치고 죽이는 개돼지 같은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6절 뒷부분은 만약 이런 개돼지 같은 사람들에게 보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면 그들은 개나 돼지처럼 그 가르침을 무시하고 짓밟고 물어뜯어 망가뜨릴 것이고 돌아서서 그 보물을 준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너희가 먼저 회개하고 나서 남을 심판하라!” 라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그들은 그 말씀을 무시하고 짓밟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 건방진 제자들을 신성모독으로 몰아 죽이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 예수님과 그 제자들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도 역시 그런 “개돼지”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영적인 개돼지를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그런 이들에게는 주님의 이런 가르침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으로 권고하면 욕만 돌아오고 분쟁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개돼지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있다. 사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아예 관심이 없다. 예수님의 보물 같은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 멋대로 왜곡시켜 가르치면서 스스로 교회에서 자신을 높이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개돼지이다.
캘빈도 개냐 돼지를 온갖 방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나 진정한 경건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을 상습적으로 모욕하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했다. 예수님 당시 개돼지들은 본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재건하겠다던 훌륭한 신앙인들이었고 이사야가 말한 남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니고 평신도에 해당하던 이들이 유대교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계층이 되고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재물에 맛을 들이자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개돼지들도 그 종족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신앙인들이 변해서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나 자신이 개돼지로 변해가는 중인데도 스스로는 알지 못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여 분별할 것이며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권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교회 안에서 개돼지인지 생각하고 골라 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은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책망하고 권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열심이 특심이고 최고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애를 쓴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한탄하며 멸시하고 있다면 우리 각자가 지금 개돼지로 변하고 있는 중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개돼지는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믿는 일에 자신의 방식대로 익숙해 지면서 변해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말씀에 비추어 내 생각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개돼지로 변해간다. 그래서 마지막에 최고로 거룩해지면 하나님까지 밀어내고 자신이 하나님 노릇하는 개돼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빼낸 후 남의 눈에 티끌을 빼라고 하신 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을 개돼지라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