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19-24 우리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돌보시니 세상에 대한 모든 근심 걱정은 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바로 앞부분인 6:1-18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니 하나님 앞에서 진짜 경건을 행하며 똑바로 살라는 것이고 19-34절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니 먹고 사는 일로 근심 걱정하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주님의 제자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돌보시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우선을 두고 전념하라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계획없이 함부로 낭비하며 살라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그 중 19-24절은 세가지를 서로 비교하며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19-21에 나오는 첫번째 비교는 하늘과 땅이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며 비교하고 있다. 보물이란 돈이나 재물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쓰인 표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소중히 여기던 것은 재물 뿐만 아니라 명예와 권력도 있었다. 저들이 이런 것들을 소중히 여긴 까닭은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고대 사회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 중 하나는 곡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자연 상태에서 보관했기 때문에 벌레먹고 썩어서 오래 보관할 수 없었다. 잘 보관했다고 해도 도둑들이 훔쳐가기 때문에 영원히 보관할 수는 없었다. 명예나 권력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기에 어느 것 하나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면 그 가치는 영원하다는 것이 20절의 뜻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쌓아야 할 보물이란 보석이나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 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같은 영적인 보물을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라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세상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척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명예와 존경을 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물을 세상에 쌓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와는 달리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에 쌓은 보물은 아무도 훔쳐자기도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려는 이유는 마음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게 되면 좋은 것만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 한다.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에게 뭐든지 다 해주려 한다. 자식이 잘된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아깝다고 하지 않게 생각한다. 마음이 자식에게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하나님에게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보물을 쌓아 두려고 한다. 하나님께 무얼 드려도 아깝지 않다. 왜냐하면 마음이 하나님께 쏠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만 사랑한다 하면서 재물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길 아까워 한다면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위선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지.
두번째 비교는 22-23에 나오는 빛과 어두움이다. 어두움 가운데 방황하는 삶을 살지 말고 밝은 빛 가운데서 살아가라는 비교이다. 이 비유는 사람들이 왜 세상에 보물을 쌓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22절에 보면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다.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은 몸 전체가 밝은 빛 가운데서 살지만 눈이 안보이는 소경은 몸 전체가 어두움 가운데서 산다고 22-23절에서 이어서 말하고 있다.
빛과 어두움은 비유이기에 빛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어두움은 악한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눈”은 시편 119:10절과 18절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눈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린 사람은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산다. 하지만 악한 세상일에 마음이 가리워져 사는 사람은 마음의 눈으로 주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에 싸여 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고 있다면 우리의 삶의 목표를 분명히 보고 그곳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의 눈은 세상 권력과 명예와 부를 바라보다가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에는 아주 실명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러한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축복해 주신 증거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영적인 눈도 뜨고 있고 세상적인 눈도 뜨고 있어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의 말이 축복받지 못한 못난 것들을 위로하느라고 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따졌을 것이다.
세번째 비교는 24절에 나오는 하나님과 재물인데 재물을 섬기다가 멸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비교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세번째 비유로 24절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대답하셨다. 여기서 나오는 두 주인 중 하나는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재물이다. 노예제도가 있던 당시 노예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니 보물을 하나님 나라에만 쌓도록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만 집중하라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고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