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43-48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닮아가라 첫번째 부분인 5:38-42절이 수동적인 사랑의 실천에 관한 것이라면 두번째 부분인 43-47절은 능동적인 사랑의 실천에 관한 것이다. 먼저 43절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은 율법인데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는 것이다. 이는 레위기 19:18에서 온 것이다. 레위기에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라고 되어 있는데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말씀이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고친 것이다. 이들은 네 몸처럼이란 말을 빼고 대신에 이웃이라는 범위를 좁게 정의하기 위해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넣었다.
이들은 유대인 동포들은 사랑하지만 네 몸처럼 사랑하지는 말라고 지키기 쉽게 고친 것이다. 이웃 사랑의 범위도 유대인으로만 한정하고 이방인들은 미워하라고 말씀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레위기 19:18 바로 앞부분인 19:9-10의 곡식이나 포도 같은 것들을 모두 다 거두지 말고 남겨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들이 줍게 남겨두라고 말씀한 것을 무시한 것이다. 나그네란 유대 지방에 살던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잠언에 나온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라는 말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바울도 이 말씀을 로마서 12:20에서 인용한 것을 보아도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가증히 여겼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증스럽게 섬기던 우상숭배 행위를 말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우상숭배를 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역시 동일하게 가증스러운 것이다. 즉 하나님의 원수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지 단순히 이방인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인 우상숭배하는 유대인 동족들은 미워하지 않고 이방인들은 무조건 원수로 미워했던 것이다. 누가 이웃이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유대인의 원수이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마리아인이 바로 이웃이라고 정의하신 것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처럼 왜곡시킨 말씀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너희원수”라고 하셨다. “너희 원수”라는 말은 사적인 원한이 있는 원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나쁘게 하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면 그들도 구원을 받을 것이고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원수가 된 것은 상대의 잘못 만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도 있기에 원수가 된 것이다.
45절 앞부분에서는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녀란 아버지를 닮는 것이다. 45절 뒷부분에서는 그 이유를 햇빛과 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해는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추어 주고 비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 준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고 잘못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모두가 다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라는 죄인들이고 모두가 다 원수인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원수에서 자녀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46-47절은 44절에 대해 반대 질문을 통해 확인시키려는 것이다. 46절은 크리스찬들의 사랑은 세상사람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세상사람들과 같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같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입이다.
46절은 해가 악한 사람에게도 비추듯 우리는 악한 사람들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한 사람의 예로 46절에는 세리가 나와 있다. 만약 우리가 세상사람들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세리보다 나을게 뭐가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한결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47절에서는 비가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다 골고루 내리듯 우리는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방인이란 말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믿는 사람들 끼리만 인사하고 지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나? 우리는 하나님처럼 모두에게 반갑게 인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48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라고 하셨다. 이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은 예수님께서 새로 만드신 말이 아니라 레위기 11:44, 45; 19:2;20:7에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서 가져오신 것이다. 거룩하다는 말을 완전하라는 말로 바꾸신 것이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우리의 감정과 판단으로 원수라고 정하고 미워하면 안되는 것이다.
5:38-42절은 악한 사람에게 대적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이다. 43-48절은 이것을 이수한 사람은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되고 더 나아가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뺨을 돌려 대는 법은 배웠지만 때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플럼머라는 신학자는 이 말씀을 놀랄만큼 간단하게 요약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 같은 것,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 같은 것,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 같은 것.”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사랑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인류이다. 예수님 말씀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므로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