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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5:38-42

Dawn Word

마태복음 5:38-42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친절을 베풀라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7. 5.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5장 강해 설교

마5:38-42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도리어 친절을 베풀고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라.

38-48절은 두개의 구전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다. 그 중 오늘 말씀인 38-42절은 수동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고 43-48절은 능동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38절은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가르쳐지고 전해지던 율법이다. 이와 관련된 말씀은 출애굽기 21-23장에 나온다.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지나친 복수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복수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에는 눈, 이는 이"라고 가르치며 이러한 구절을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바로잡고자 예수께서 네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첫번째의 예는 누군가가 나를 때려 상처를 입힌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에베소서 6:13절과 베드로전서 5:9절과 야고보서 4:7절과 반대가 된다. 이 세 구절들은 "악에 대해 맞서 싸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세 구절에서 악이란 여성명사이기에 추상적인 의미의 악이다. 악한 마귀에 맞서 싸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악은 남성명사이기에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악한 사람과 맞서 싸우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보복하면 훨씬 더 심하게 보복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시한 그 해결책은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의 “오른 뺨을 때린다면 왼뺨도 들이대라” 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른손 잡이이기에 오른 뺨을 때렸다는 것은 손등으로 살짝 때린 것이다. 이것은 아프거나 상처를 입기 보다는 모욕의 상징이었다. 그런 때에는 왼뺨도 들이 대라는 것은 상대의 오른손 손바닥으로 맞는다는 뜻이고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예는 소유에 관한 예인데 이는 법정에 고소해서 속옷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옷은 아주 값비싼 물건이었다. 예수님의 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 뽑았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여러분에게 자동차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안갚는다고 고소해서 산지 얼마 안된 자동차를 빼앗아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친구에게는 속옷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값비산 겉옷까지도 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세번째 예는 노동력 착취에 관한 것이다. 억지로 가자고 시킨다는 말은 요셉푸스의 기록에 나오는데 이 말은 페르샤에서 온 말이다. 원래 이 말은 군대 물자를 강제로 나르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 말로 하면 “부역”이라고 한다. 이는 자원봉사가 아닌 강제로 시키는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권력을 가진 관리가 부당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1마일을 가라고 명령하면 대항해서 싸우거나 보복하지 말고 2마일을 운반해 주라는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지나가는 유대인 아무나 잡고 이 짐을 들고 가라고 명령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군인들이 이렇게 부당하게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네레 시몬도 로마 군인이 지고 가라고 명령하니까 한 것이다.

네번째 예는 돈에 관한 것이다. 돈을 꿔달라고 하거나 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말고 주라는 것이다.

이 네가지 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분은 비현실적인 이상론이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잡히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실제로 보여주셨다. 침뱉고 얼굴을 가리고 때리고 홍포를 입혀놓고 조롱하기까지 했지만 그들이 하다가 지칠 때까지 참으셨다. 예수께서는 이상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당신을 따르기 위해 실제로 지켜야 할 원리를 네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제자들도 따라오길 바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본훼퍼는 이를 “주의 십자가에 눈에 보이도록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펄전은 “악인들이 망치가 될 때 우리는 모루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악인들이 발의 더러운 것을 털려할 때 우리는 신발의 흙을 터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약해서 아무 저항도 못하는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악한 세상 사람들을 닮지 말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처럼 약한 듯하지만 때로는 진리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을 때 대제사장에게도 도전을 하셨다. 바울도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유대인들이 오자 물러나는 것을 보고 공개적으로 강하게 꾸짖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조건 굴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수하지 말라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의 무저항은 복수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께서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신 목적은 법정의 판단에 맡기고 또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하실 심판에 맡기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집에 들어온 강도가 우리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그 강도를 잡은 상황과도 같다. 직접 그 강도에게 칼로 찔러 더 큰 고통을 주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했던 개인적인 복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강도를 자리에 앉게 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 진정 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해서 그 사람을 데려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그 백성들을 한없이 참아주신 한결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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