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3:8-10a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고 야곱의 자손들도 언제나 변함없이 악한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너희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너희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악한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로 십일조를 제시한다.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라고 물으신다. 도둑질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강도질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늘 말씀 3:8-9절에서 네번이 나온다. 같은 말이 잠언 22:23절에서 두 번 나오고 성경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잠언 22:23절에서는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라고 했다. 원어는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노략하시리라" 라는 뜻이다. 가난한 자가 소작료를 내지 못하자 부자는 그를 법정으로 끌고가서 강제로 빼앗은 상황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강제로 빼앗아서 결국 가난한 자의 생명을 위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그 부자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으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8절의 도둑질이라는 말은 몰래 훔쳐간다는 말이 아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상대의 생명을 위협하며 강제로 빼앗아 간다는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소유를 강제로 빼앗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수사학적 질문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강도질했다. 그러면서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강도질 했나이까?" 라고 오히려 반문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봉헌물들이다" 라고 답하신 것이다. 말라기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강도질 한 것은 바로 십일조와 봉헌물들이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강제로 빼앗아가면 소유가 없는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이 굶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하나님의 생명을 위협하고 빼앗아가는 것이다.
9절은 원어에서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다" 고 되어있다. 완전히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했다는 말 만큼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가만두지 않고 폭력적으로 갚아주셨다는 뜻이다. 이는 바벨론에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을 뜻한다.
이어서 나오는 말은 "왜냐하면 너희가 내 것을 강도질 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한다.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런데 너희는 아직도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허락하셨는데도 아직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한다는 것이다. 9절의 마지막에는 "너희 온 나라가" 라는 말이 붙어있다. 어느 누구 할 것없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것을 다 강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10절 앞부분은 "완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서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 한 것을 회개하고 십일조 전체를 하나님의 창고에 들여 놓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 양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신명기 14:29절에 보면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먹이시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십일조로 먹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십일조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지으셔서 힘과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잠시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소작농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레위기 25:23절에 보면 "토지는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라고 되어있다. 고대의 토지는 사람들의 전재산이다. 이처럼 십일조의 의미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를 잠시 빌려쓰는 소작농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지주들은 소작인들에게 수확의 절반을 받았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1/3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1/10을 받으신 것이다. 분배 받은 토지가 없기에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하나님께서 십일조로 먹이신 것이다.
그런데 신명기 8:17절에 보면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땅과 그 능력과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은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은 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능력과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8:18절에 이어지는 내용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내 모든 소유도 내게 주셨고 내 몸도 내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고 이미 폐지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십일조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약의 중요한 율법이 신약에서 폐지되었을 때는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할례였다. 십일조도 할례만큼은 중요한 율법이었다.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잘라낸 것이라면 십일조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왕이시고 주인이시라는 표시로 드리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신약시대에 와서 그것이 갑자기 폐지되었다면 반드시 격렬한 논쟁이 신약성경에 나타나야 한다. 십일조가 폐지되었다는 말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사도행전을 보면 전재산을 드리는 사람들이 나온다. 고린도후서 8:2절에 보면 "환난과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이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라고 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온 힘 다해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자신들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렸던 것이다. 그 밖에도 바울서신 여기 저기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헌금을 드렸는지 찾아볼 수 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마태복음 5:17절에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에 얽매여 율법의 노예로 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마태복음 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법을 정하신 본 뜻을 알고 행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야고보 1:25절도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이다.
정말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그런 분들이 과부 두 렙돈을 드리는 심정으로 기쁨으로 하겠다면 해도 된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정도 다 아시고 그러한 마음도 다 아신다. 만약 마음에 큰 기쁨과 감사가 있어 삭개오처럼 그 소유의 절반을 드려도 된다. 우리는 자유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정하신 하나님의 본 뜻을 알고 기쁨으로 드리길 원한다면 그 기쁨의 분량만큼 드리면 된다. 그러나 억지로 내지는 말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9:7절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라고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