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5-9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아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가게 한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대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모든 백성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신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은 진 밖에 버린 똥 위에 그 얼굴을 쳐박도록 내 던져지고 그 똥과 함께 태워 없애 버리실 것이라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레위와 맺은 언약이 본래 어떤 것이었는지를 말씀하시며 제사장들이 그 언약을 깨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대했기에 그들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셨다는 내용이다.
5절은 "레위와 맺은 내 언약은 생명과 평화의 언약이었다" 라고 말한다. 한글 성경들에서는 이미 과거에 완전히 맺어진 언약이었다는 말이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레위와 맺은 언약을 회상하시는 장면이다. 생명과 평화가 약속된 언약이란 오랫동안 살게 해 주고 평화롭게 살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이는 신명기 4:40절에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하는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생명과 평화가 약속된 것이 그림처럼 표현된 것은 시편 1:3편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평화의 약속을 레위에게 주셨다.
언약은 항상 서로 약속을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약속이 이어지는 것이다. 레위가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다. 이는 말라기에 나오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장들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레위는 약속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 이름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 앞에 압도되었다는 뜻이다. 처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레위는 그렇게 언약을 지켰다는 것이다.
6절은 어떻게 레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려워했는지 그 증거를 댄 것이다. 이는 제사장으로서 그 책임을 성실하게 다 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이다. 먼저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리의 법이란 모세를 통해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이다. 레위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설명하고 가르쳤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성실하게 전하는 것이다.
또 그 입술에서는 불의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가르치고 그 말씀을 근거로 판단을 할 때에 잘못 판단하는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것인지를 말할 때 잘못 말하는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삶에서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판단하여 해석해 주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번째 단계이다.
그 다음에는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했다. 새번역은 화평함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고 번역했다. 하나님과 언약을 잘 지키면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되어 하나님을 불편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정직함이란 본래 땅이나 탁자가 평평한 것을 뜻한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법을 행함에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으니 항상 그렇게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번째 단계이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해석하여 판단하며 그 말씀을 따라 바르게 행한 결과로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한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해석하여 판단하고 그 말씀을 따라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7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6절과 연결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것은 제사장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다할 때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호세아 4:6절에서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라고 했다. 지식을 지킨다는 말은 제사장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익히고 가르쳐서 그 입술로 백성들의 지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을 익혀 그 지식을 지키는 것이 제사장의 일이라면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찾아와서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사장만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도 그 말씀을 사모하여 제사장에게 나와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7절 끝 부분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 그렇게 제사장에게 나와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라고 했다. 새번역은 특사라고 번역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천사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심부름 꾼이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 특사를 보내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심부름꾼이라면 그 전하는 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보낸 특사라면 모두가 그를 존중해 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특사라면 역시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다. 특사가 위대하기 때문에 존중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에 존중하라는 뜻이다.
8절은 그런데 너희는 그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너희란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이다.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회복시켜 놓은 제사장들이다. 왜 벗어났다고 하는가 하면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못 가르쳐서 사람들이 잘못 알게 되고 그 잘못된 가르침에 걸려 넘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너희는 그렇게 잘못 가르쳐서 레위의 언약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거짓 평화를 외치며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살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원하는 부분만 잘라서 사람들 듣기 좋은 말만 전하고 애통하며 회개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원어에서 8절 마지막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덧붙임으로 강력하게 경고한다.
9절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사장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경멸을 당하고 천대를 받게 하신다고 했다. 이는 이러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길들을 지키지 않았고 그 가르침에 있어서 치우치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았고 부분적으로 사람들 좋아하는 것만 가르쳤다는 뜻이다. 새번역은 "율법을 편파적으로 적용한 탓이다" 라고 번역해서 좀 더 알기 쉽도록 번역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일부는 빼 놓고 사람들에게 유리한 것만 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받은 만큼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들어서 우리 자신이 그 말씀을 따라 바르게 판단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말씀을 담는 것이다.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자기들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만 전해서 망한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오신 이후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기에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