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1:10 하나님은 헛된 제사를 받지 않으실 것이니 그런 제사를 드리려면 차라리 성전 문을 닫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히 구별되지 않은 제물들을 성의없이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장들을 책망하신 내용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기 원하시며 그들로부터 제물도 받지 않으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원어에서 10절은 "너희 가운데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실제로 성전 문을 닫길 원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의 뜻은 형식적인 예배를 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를 드리길 원하시는 마음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런 형식적인 예배를 그만두고 차라리 성전 문을 닫는 것이 낫겠다 라는 뜻이다. 이어서 "너희가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성전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헛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을 당장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부모가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자녀에게 "차라리 나가 버려라! 넌 내 자식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말을 하는 부모 중에 자식이 진짜 나가 버리고 다시는 보지 않길 원하는 부모가 있을까? 이는 그런 못된 행동 당장 그만두고 부모의 뜻에 순종하며 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는 것이 낫겠다고 하신 것도 헛된 제사를 그만두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 왕을 통해서 성전을 파괴하여 성전 문을 닫았던 일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마치고 성전을 새로 지어 봉헌하고 다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마치 매를 때려 내쫓은 자식이 다시 돌아와 용서해 달라고 이제부터 안 그러겠다고 받아 준 아버지와 같다. 그런데 용서 받은 자식이 얼마 안되어 전과 똑같이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 것과도 같다.
이어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 가운데 기쁨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멸시하며 거짓 거룩으로 포장된 거짓된 헌신을 거부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드리는 예물로 살아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마치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는 "아빠도 한 입만!" 하고 말하는 아버지와 같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드리게 하셔서 기쁨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 대해 기쁨도 없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경외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형식적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니 아무 쓸모 없는 예물인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70년간이나 포로 생활을 한 뒤 돌아왔어도 저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중심적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오던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하나님께는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자식들 좋은 학교 가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 라는 식으로 계속 "달라! 달라!"를 외치며 뜯어가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바꿀까? 말라기는 시작부터 헛된 제물을 드리는 것을 지적한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3:10-12절에서는 십일조 도둑질하지 않고 정직하게 드리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물질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금식기도 많이 하고 예배를 빠짐없이 드린다 해도 바꿀 수 없다.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예배는 시작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십일조는 바로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신약에서는 십일조가 나오지 않으니 십일조는 이미 폐지된 구약의 율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말라기에 나오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돌아온 유대인들의 지도자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다. 자기 중심적으로 모든 물질을 사용하면서 말로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역겨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는 절대로 율법이 아니다.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논쟁거리가 되었다면 신약성경에서도 반드시 나왔을 것이다. 모두가 그 이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두가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기 보다는 십일조를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다. 구약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람들은 십일조를 할 사람들이 아니라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교회 성도들의 십일조를 통해 공급을 받는 전임 사역자들도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니지만 신앙 공동체를 통해 공급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은 같다. 전임 사역자들은 본을 보이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만약 오늘날 자신이 그런 사람에 속한다면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십일조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역겹다고 하신 것은 좋은 것은 자신들이 갖고 흠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물을 책망한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는 절대로 율법이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모든 물질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출발점이다. 먼저 기쁜 마음으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는 남은 것으로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