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2:1-9 하나님께서는 돌아온 자들을 회복시키셔서 강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 먼저 약한 유다를 구원하시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강하게 하셔서 온 세상 악한 자들을 다 멸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참된 목자인 메시야를 거절하고 악한 목자를 세운 자들은 그 악한 목자에게 망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목자도 제거하신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악한 자들을 모두 제거하신 뒤 남은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이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니라 악한 백성들과 악한 목자들을 모두 멸하신 뒤 남은 모든 이스라엘이라는 뜻이다. 이들에 관해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경고 라는 말은 본래 짐이나 부담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괴하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 하나님께서 참 목자인 메시야를 거절한 자들과 거짓 목자도 다 멸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 백성이든 대적들이든 악한 자들은 모두 다 멸망시킨다는 말씀이니 짐이고 부담인 것이다.
그 여호와는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한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사람을 지으셔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 분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 분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정결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다. 악한 자들은 멸하시고 하나님 원하시는 창조세계가 되도록 관리하시고 유지하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2절은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라고 말한다. 잔은 시편 116:13절에서는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라고 했다. 그러나 이사야 51:17절에서는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라고 했다. 이처럼 잔은 때로는 축복과 구원의 잔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판과 멸망의 잔으로 쓰이기도 했다. 2절에서는 그 의미가 축복인지 심판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3절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은 그 대적들에게 심판과 멸망의 잔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다. 취하게 한다는 말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나타낸 말이다.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예루살렘은 대적들에게 쏟아지는 심판과 멸망의 잔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포위될 때 유다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유다도 역시 포위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3절은 예루살렘이 무거운 돌이 된다고 했다. 이는 2절에서 예루살렘이 잔이 된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2절에서는 비틀거리게만 했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들어올리는 자들은 크게 상한다는 것이다. 크게 상한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자르기 위해 잘려진다"는 뜻이다.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은 매우 심각하게 잘려 나간다는 뜻이다. 이는 건축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들어올려 자신들의 집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보기보다 훨씬 무거워서 들어올려 집을 짓다가 그만 그 돌이 떨어져 몸이 완전히 잘려 나가는 장면이다.
4절은 "여호와께서 선포하신다" 라고 말하며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한다고 했다. 이는 말이 미쳐 날뛰어 그 탄자들을 떨어뜨리고 짓밟아 뭉개는 장면이다. 그러나 유다 족속은 하나님께서 눈으로 지켜 보시며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들이 미쳐 날뛰는 중에도 유다 족속은 어린아이를 돌보듯 안전한 곳에 두시고 지켜 보시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유다 족속을 안전하게 돌보시는가 하면 여호와께서 모든 민족의 말들의 눈을 쳐서 눈이 멀게 하실 때이다. 모든 말들이 눈이 멀어 날뛰며 탄 자들을 떨어뜨리고 짓밟는 아수라장에서도 유다 족속은 안전하게 돌보신다는 것이다.
5절은 유다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2절에서 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유다도 포위되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이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어 승리할 때 유다도 역시 강하게 되어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6절은 그 날에 내가 유다의 지도자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한다고 했다. 이는 많은 나무들 사이에 작은 화로에 담긴 불이 활활 타는 장면이다. 또 그들로 하여금 곡식 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신다고 했다. 많은 곡식단들이 쌓여있는 가운데 작은 횃불 하나가 활활 타고 있는 장면이다. 둘 다 다른 그림이지만 작은 것이 큰 것을 다 태워버리는 그림이다. 아주 미약한 유다의 지도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불이 타게 하셔서 강한 자들을 다 태워버리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 주변을 다 태워버리고 대적들을 완전히 멸하게 하신 다음에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 다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6절이 유다의 지도자들을 통해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7절은 여호와께서 유다의 장막을 먼저 구원하신다고 했다. 유다의 장막과 비교되는 것은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다. 다윗의 집은 다윗 왕가의 영광을 말하는 것이고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은 그 신하들의 영광이다. 예루살렘은 왕족들과 고위관료들과 제사장들이 살던 곳이기에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반면에 유다는 하층민들이 예루살렘 주변에 흩어져 살았고 아무런 방호벽도 없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먼저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통치자들의 영광이 그런 약한 자들의 영광만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먼저 연약한 유다를 구원하신 다음 8절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을 것이라고 했다. 예루살렘 주민 중 가장 신분이 낮고 힘도 없는 자가 다윗과 같이 강한 왕처럼 된다는 것이다. 또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그들 앞에서 여호와의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예루살렘 주민들은 모두가 그렇게 최고로 강하게 된다는 뜻이다. 9절은 예루살렘을 치러오는 모든 나라들을 여호와께서 멸하기를 힘쓰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주민이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용사 여호와께서 대신 싸워 주시기에 강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과 유다의 회복의 장면은 모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메시야를 귀 뚫은 노예 값인 은 삼십 던져주고 내쫓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가짜 목자를 내세워서 다 멸하게 하시고 그 가짜 목자까지 멸하신다고 한 뒤 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렇게 불순종하는 자들을 다 멸한 뒤 남은 순종하는 자들을 모아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진짜 메시야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남은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예언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약한 자들을 먼저 구원하신 것이 그 예언의 성취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그러한 뜻을 따라 약한 자들을 먼저 돌보셨으니 우리도 역시 우리 주님을 따라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고 버린 자들을 먼저 돌보도록 하자. 그렇게 약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강하고 복된 우리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