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10:4-6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세우셔서 그 나라를 견고히 세우시고 승리하게 하셔서 대적들을 멸하시며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여 완전히 회복시켜 주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불쌍히여기셨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은 헛된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이는 거짓 목자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목자가 되셔서 그 백성들을 이끄시고 전쟁터의 날쌘 말로 만드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도 전쟁터의 그림이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강한 군사로 만들어 대적들을 짓밟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에게서 들으신다는 것이다.
4절은 전쟁터의 지도자에 대한 비유가 이어진다. 모통잇돌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를 뜻하난 비유로 쓰였다. 사사기 20:2절과 사무엘상 14:38절에서 "백성들의 어른" 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른" 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에서는 모퉁이 돌이라는 뜻이다. 이사야 19:13절에서는 애굽 지파들의 모퉁잇돌들이 소안의 왕자들이라고 했다. 모퉁잇돌이란 왕이나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시편 118:22절에서도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라는 구절에서도 메시야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또 말뚝은 텐트를 견고히 세워주는 말뚝이다. 유목민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인 텐트를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세워주는 것이 말뚝이다. 말뚝이라는 말은 이사야 22:23절과 25절에서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라는 말에서 못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텐트 말뚝의 비유는 나라의 일을 짊어지고 가는 저명한 자를 상징하고 유다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이 말씀에서는 앞으로 나타날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다. 모퉁잇돌이 정착민들의 집인 돌로 된 건물을 견고하게 세워주는 것이라면 말뚝은 유목민들의 집인 텐트를 견고하게 세워주는 것으로 둘 다 지도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또 싸우는 활도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을 상징하는 말이다. 열왕기하 13:15-18절에서 활과 화살이 나온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 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하나님 뜻을 성취하는 것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싸우는 활"은 메시야의 통치가 강하고 견고하여 승리하고 신뢰할만한 메시야의 통치의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비유는 모두 다 새로운 왕인 메시야를 뜻한다고 봐야 한다. 대적들을 물리치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 나라를 견고히 세우는 메시야를 뜻하는 상징들로 쓰인 것이다. 4절 끝에 나오는 권세 잡은 자들은 그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그들 모두가 메시야 앞으로 나와 메시야의 뜻을 받든다는 뜻이다. 5절에서 그들은 싸울 때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들을 짓밟는다는 것이다. 대적들을 진흙 투성이인 땅에 짓밟아 멸한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이 싸운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했다. 고대의 전투에서 걸어서 싸우는 보병들은 말을 탄 기병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탱크와 같은 말 탄 기병들을 이긴다는 뜻이다.
6절에서 여호와께서 유다의 집을 견고하게 하고 또 요셉의 집도 구원한다고 했다. 유다의 집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뜻하고 요셉의 집은 나머지 열 지파를 뜻한다. 먼저 유다의 집을 견고하게 세운 뒤에 나머지 모든 지파들을 구원하여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내버린 적이 없음 같이 하신다고 했다. 완전히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다.
이는 메시야를 통해 완전히 회복될 하나님 나라를 뜻한다. 여호와께서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튼튼히 세워주시고 대적들을 물리쳐 주셔서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지 절대로 믿는 자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승리하게 하셔서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이지 절대로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