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8:9-17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경건을 추구하는 남은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집을 세우라. 진실을 말하고 진실된 판단을 하며 거짓 증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신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실과 인자와 긍휼로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회복시켜 주셔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그 백성들이 범죄하여 직전에 겪은 고난과 조상들이 범죄하여 겪은 고난을 떠올리며 이제 형식적 금식이 아닌 진정한 순종을 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시고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한다.
9절은 또 다시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네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라는 말로 이어간다. 이는 사사기 7:11과 사무엘하 2:7에서도 나온다. 이는 본래 전쟁을 시작하기 전 용기를 내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누구에게 용기를 내라는 것인가?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이 날에 선지자들의 입으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듣는 사람들" 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들이란 스가랴를 비롯하여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성전 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 선지자는 스가랴와 학개이기에 이 두 선지자를 말한다.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성전 재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이날은 만군의 주 여호와의 집의 기초가 놓이던 날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사람들은 성전이 완공되는 그 날까지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무리들과 싸워가며 성전을 세워야 하기에 전쟁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든 용기를 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방해하는 무리들과 실제로 싸우라는 뜻이 아니다. 그 싸움은 16절 이후에 나오는 진짜 경건이다. 진짜 경건을 행하며 맞서라는 것이다.
10절에서 "이날 전에는" 이라는 말은 "성전의 기초를 놓던 날 이전에는" 이라는 뜻이다. 그 이전에는 사람도 품삯이 없었고 짐승도 품삯이 없었다고 했다. 이는 사람이나 짐승이 농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는데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는 원수들이 끊임없이 공격하고 약탈을 하는데도 아무런 보호막도 없었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내가 모든 사람을 서로 풀어주게 하였느니라" 라고 했다. 개역개정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성서를 따라 그 이웃 사람들에 보냈다는 말을 "서로 풀어주게 하였느니라" 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본래 히브리어의 문자적인 뜻은 "내가 모든 사람들을 그 이웃 사람들에게 보냈다" 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역은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라고 했고 새번역은 "내가 이웃끼리 서로 대적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번역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새번역처럼 하나님께서 이웃끼리 서로 대적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대다수의 성경 해석자들도 서로 대적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 말은 분명히 평화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서로 대적하도록 보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개역개정처럼 이제 과거의 적대가 사라지고 화해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11절도 원문은 새번역처럼 "그러나 이제" 이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에 문맥으로 보아도10절에서 이미 적대감이 사라졌다고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11절은 그러나 이제 남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전처럼 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이란 성전이 파괴되고 나서 재건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이제 하나님의 분노는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처럼 그 백성들의 남은 자들에게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남은 자들을 대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다르게 대하시는 조건은 7:1-14절에서 말한 것처럼 금식과 같은 가짜 경건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항상 동일하게 진실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진정한 경건을 행하는 것이다.
12절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전과는 다르게 그 남은 자들을 대한다고 하신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개역개정은"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라고 했다. 이 말은 본래 "씨앗에 평화가 있을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래서 개역은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고 새번역도 "뿌린 씨는 잘 자라며" 라고 NIV를 따라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10절에서는 뿌린 씨앗이 자라지 못해 아무런 품삯도 얻지 못했는데 이제 제대로 자라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어서 씨앗에 평화가 어떻게 오는지를 설명한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생산할 것이고 그 땅은 곡식을 생산할 것이고 하늘은 이슬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이 모든 것을 상속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본래 레위기 26:3-10절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씨앗의 평화는 두가지가 없어야 한다. 첫째는 가뭄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수확을 많이 거두어도 적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씨앗의 평화는 하나님께서 가뭄과 전쟁을 없게 하실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13절은 유다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이 과거에는 이방인 가운데 저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뭄과 전쟁으로 그 백성들을 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를 받은 백성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어서 또 다시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님의 집을 다시 재건할 때 수많은 대적들의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인데 담대히 용기를 내어 싸우며 집을 지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포로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의 과거의 죄를 말씀하시며 회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출애굽 때 이후 하나님을 대적한 조상들의 죄를 말씀하시며 회복을 선언하신다. 14절은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왜 용기를 내어 싸우며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한 것이다. 그 내용은 너희 조상들이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원어에는 또 다시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라고 다시한번 말씀하신 뒤에 "그 뜻을 돌이키지도 않았다" 라고 말씀하신다. 과거 조상들의 죄에 대해서는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을 하고는 그대로 재앙을 내리셨다는 뜻이다.
15은 이 때에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기로 계획한 것을 돌이키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집에 좋은 것을 내리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가랴 시대의 사람들도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좋은 것을 내려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지은 죄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과거처럼 금식과 같은 가짜 경건을 행하지 말고 진짜 경건을 행하라고 한 것이다.
16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행해야 할 진짜 경건이다. 너희 행할 일은 이러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첫째 서로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만 말하라는 뜻이 아니고 항상 진실을 말하며 서로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개역은 "진실을 말하며" 라고 바르게 번역했는데 개역개정은 "진리를 말하며" 라고 번역해서 그 의미를 손상시켰다. 이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 항상 같은 말로 진실하게 말하라는 뜻이다.
둘째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고 했다. 성문은 재판하는 장소이기에 재판정에서 재판하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재판을 하라는 말은 앞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할 때 진리와 같은 말이다. 여기서도 항상 똑같이 진실한 말로 재판을 하고 속이는 말로 거짓된 재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화평한 재판이라는 말에서 화평하다는 말은 본래 완전하다는 뜻이다. 진실한 말로 재판을 해서 공동체를 완전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통치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한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17절은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증인의 모습이다. 셋째 증인은 진실된 증언만 하라는 것이다. 먼저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 속으로 이웃을 해치려고 거짓 증거를 할 계획을 꾸미지 말라는 것이다. 또 그것을 법정에 서서 거짓 증거를 하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다. 이러한 거짓 증거의 죄는 마음 속으로 계획하기만 해도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속까지 다 알고 계시고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것이기에 반드시 순종하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축복이란 믿는 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바로 세우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금식하며 스스로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함이 없고 원수를 용서하는 한결 같은 사랑도 없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다. 그렇기에 거짓된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좋아하며 상대를 헐뜯고 흉을 보아서 교회를 허물어뜨린다.
반대로 자신을 거룩하게 포장하지 않고 항상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는 복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나의 거짓 거룩함과 나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들을 비난하고 흉보고 욕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나의 거짓된 거룩의 담을 무너뜨리고 진실을 드러내며 나를 희생해서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을 세워주는 사람인가?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