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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스가랴 › 8:1-8

Dawn Word

스가랴 8:1-8

회복시켜 주시고 함께 사시는 하나님

등잔대와 두 올리브나무 · 스가랴 4장

2021. 2. 26. · 안정섭 목사 · 스가랴 8장 강해 설교

스가랴 8:1-8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실과 인자와 긍휼로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회복시켜 주셔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항상 진실하게 대하고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긍휼히 여겨 돕는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진실과 인자와 긍휼로 진정한 경건을 이루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새로운 예언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스가랴에게"나 "내게" 라는 말이 빠져있다. 아마도 반복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썼을 것이다. 2절은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신다며 개역은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라고 했다. 같은 말이 1:14절에서도 나온다. 예루살렘과 유다를 괴롭혀서 평안히 사는 이방 나라들을 보고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8:1절도 이방 나라들은 평안히 잘 살고 있는데 회개하고 진정한 경건을 행하며 살고 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고통 중에 있었기 때문에 느끼는 하나님의 감정이다. 그래서 시온을 위하여 그 이방 나라들에게 크게 질투하고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한다고 한 것이다. 시온을 위하여 질투한다는 말은 시온을 사랑한다는 뜻이기에 새번역은 열렬히 사랑한다고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를 지워버리고 의미만 남겨놓은 번역이다.

3절은 그러므로 여호와가 말씀하신다며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라고 했다. 1:16절에서도 시온을 위하여 질투하신 하나님께서 시온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오심으로 예루살렘이 재건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8:3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은 시온을 불쌍히 여겨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이다.

그렇게 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가운데에 거하신다고 했다. 거하신다는 말은 이제 그들과 함께 터를 잡고 계속 함께 사신다는 뜻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정한 경건을 이루려는 사람들과 함께 사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리우게 된다는 것이다. 진리라는 말은 항상 변함이 없이 진실하다는 뜻이기에 새번역은 "성실한 도성" 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개역개정보다 새번역이 원문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항상 똑같이 신실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읍이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 불리우게 된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항상 진실한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축복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항상 진실하게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고 참된 회복이다.

4절은 또 다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고 하며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는다고 했다. 길거리라는 말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큰 길이나 넓은 광장을 뜻하는 말이다.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들이 길거리에 앉는다는 말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앉아서 그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가르치고 상담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는다는 것은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나이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뜻이다. 전쟁과 기근이 오면 제일 먼저 죽는 것은 노인들이다. 따라서 노인들이 그렇게 오래 산다는 것은 평화의 시기가 계속 지속된다는 뜻이다.

5절은 그 도시의 길거리나 광장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차고 그 넓은 길에서 떠들며 논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그 사회의 미래이다. 어린아이들이 없다면 그 사회의 미래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5절은 앞으로 회복될 나라의 밝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짝을 이루는 말과 문맥을 통해서 봐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많이 뛰어 논다는 것은 4절에서 오래 장수하는 노인들의 모습과 짝으로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고생할 때는 많이 죽게 된다. 하지만 이제 완전한 평화의 시기가 올 것이기에 그 때는 그렇게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4-5절은 지속될 평화와 번영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6절은 또 다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며 말을 이어간다. 이 일이 그날에 그 백성의 남은 자들의 눈에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하나님께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 18:10절에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사라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웃자 18:14절에서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라고 하셨다. 6절은 그와 똑같은 것이다. 예루살렘이 회복된다는 말은 사람들의 눈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7-8절은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말한 것이다. 7절은 또 다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낸다고 했다. 8절은 그렇게 구원해 낸 백성들을 이끌어 와서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였지만 세계 각국에 흩어진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성실과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했다. 개역에서 진리라고 번역한 말은 3절에서 진리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성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항상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시며 변함없이 그 백성들을 지켜주신다는 뜻이다. 공의란 공정한 재판으로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공정하게 재판해 주시며 항상 동일하게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8:2절에 나타난 대단한 질투와 분노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남들은 모든 일이 다 잘되고 형통하는데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이나 배우자는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대단한 질투와 분노는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대적들에게 질투와 분노를 하시며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않고 진실과 인자와 긍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그렇게 회복시켜 주시고 완전한 평화를 주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지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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