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7:8-14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항상 진실하게 대하고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긍휼히 여겨 돕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들을 위한 금식 대신에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듣고 죄를 멀리하는 진정한 경건함을 기뻐하신다 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한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다.
8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새로운 예언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스가랴 7:4절은 "내게 임하여" 라고 했다. 그런데 계속 예언이 이어지는데 7:8절에서는 "스가랴에게 임하여" 라고 했다.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이러한 8절의 공식이 연결되는 예언의 흐름을 끊는데다가 "내게 임하여" 라고 하지 않은 것이 후대의 편집자가 삽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임하여"와 "스가랴에게 임하여" 라는 공식이 섞여 나온 경우는 예레미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라는 말을 쓴 경우는 주로 다른 사건이 앞에서 나오고 이어서 예언이 임했을 때 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썼다. 그러나 예언이 계속 이어지는 중간에도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예레미야 33:1이 후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중에 33:19절과 33:23절에서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라는 공식이 나온다. 34:1절 이후 예언이 계속되는 중에 34:12절에서도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라는 공식이 나온다. 학개 1:3절 이후 예언이 계속되는데도 2:20절에서 "학개에게 임하여" 라는 말이 나온다. \ 따라서 "내게 임하여"라는 말이 "스가랴에게 임하여"로 바뀐 것이 후대의 편집이라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 스가랴 7:8절 이후 나오는 내용은 7:1-7절에서 형식적인 경건이 아닌 진정한 경건을 원하신다고 한 뒤에 그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이 이어지기에 예언의 흐름을 중간에 끊었다고 볼 수도 없다.
9절은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형식적인 금식이 아닌 진정한 경건을 원하시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음의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무엇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한 경건이고 그 백성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첫째로 진실한 재판이다. 진실하다는 말은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똑같다는 뜻이다. 재판이란 이전에 행해진 현명한 재판 기록을 보고 상대가 누가 되었든지 항상 똑같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봐주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는 통치자와 그 백성들의 관계에서 진정한 경건이 무엇인지를 말한 것이다.
둘째와 셋째는 "서로" 또는 "피차"로 변역된 말이 붙어있다. 이는 통치자와 백성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일반 백성들 끼리 서로 보여주어야 할 진정한 경건이다. 둘째 인애라는 말은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는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상대가 끊임없이 배신하고 또 배신해도 동일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행해야 하는 진정한 경건이다.
셋째 긍휼이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이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에서 행하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려주는 것이다. Brown-Driver0Briggs 히브리어 사전에 보면 "같은 자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느끼는 형제애" 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BDB, 9025).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에게 형제처럼 느끼고 불쌍히 여겨 은혜를 내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돕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마른 땅에 이슬과 단비를 내려 적셔 주시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시편 40:11 절에 보면 긍휼과 인자와 진실이 반대의 순서로 나온다. 다른 점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과 주의 인자와 주의 진실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와 진실은 그 출발점이 긍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를 잊고 우리 생각을 따라 살 때 한없이 참아 주시는 것이 주의 인자이다. 그러한 긍휼과 인자가 항상 변함이 없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출발점은 오늘 말씀에 보면 진실이다. 누구에게나 항상 한결같이 성실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진실된 재판이다. 그러한 성실함이 계속해서 배반하는 동료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아주는 것이 그 다음 단계이고 그 마지막 단계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형제 자매처럼 느끼고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10절은 고아와 과부는 보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들이다. 나그네는 거할 집이 없는 사람이고 궁핍한 자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압제한다면 긍휼함이 없는 사람이다. 또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해한다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보복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면 인자도 없고 진실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11절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장면이 단계적으로 묘사된다. 먼저 그들이 듣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듣기 싫어 듣는 둥 마는 둥 딴청을 부리는 것이 거역하는 첫 단계이다. 그 다음 단계는 등을 돌리며 거역하는 것이다. 원어는 고집스럽게 등을 돌린다는 뜻이다. 호세아 4:16절에서는 "완강한 염소처럼 완강하니" 라는 말에서 완강하다는 말이 고집스럽다는 말의 뜻이다. 등을 돌렸을 때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어깨를 만지며 돌아서라고 타일러 보지만 고집스럽게 버티고 절대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어깨를 잡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자 이번에는 귀까지 틀어막고 듣기 싫다고 거역하는 것이다.
12절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마음을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해 전한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율법이란 모세 오경을 뜻하고 선지자들의 말은 예언서들을 뜻한다. 넓게 보면 역사서들도 결국 예언서의 범주에 포함이 되기 때문에 구약성경 전체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거역하는 자들이기에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13절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러도 듣는 둥 마는 둥 빈정거리다가 등을 돌리고 획 돌아서서 아무리 달래도 염소처럼 완강하게 버티다가 귀까지 틀어막고 듣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똑같이 하시겠다는 것이다. 끝까지 듣지 않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자 그제서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자신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 편에서 "안들려!" 라고 외치며 등을 돌리고 귀도 틀어 막으신다는 것이다.
14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고 등을 돌리고 귀도 틀어막으시고는 그들을 회오리바람으로 확 흩어 날려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지 못하던 모든 나라들 가운데 흩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다는 황무지처럼 버려지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아예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그래서 14절 마지막은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라고 하신 것이다.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땅을 황무지로 만든 것은 바로 너희들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한 경건 금식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헌금 많이 하며 거룩한 척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을 거룩해진 것으로 착각하고 남을 평가하며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한 경건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과 자비와 진실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대의 순서로 항상 성실하게 대하며 원수까지도 한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경건함이란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이러한 진정한 경건을 이루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