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2:6-13 이제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급히 탈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신 자들을 다 멸하시고 그렇게 모인 백성들 가운데 함께 사시며 통치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둘러싸는 불의 성벽이 되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영광이 되실 것이기에 우리가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바벨론에서 도망쳐 나와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것이다.
6절은 원어에서 "호! 호!" 라는 감탄사가 두 번 반복해서 나온다. 이는 "아! 아!" 하고 탄식하듯 다급히 외치는 외마디 소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 북쪽 땅에서 아주 다급히 도망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말한 뒤 이어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북쪽 땅에서 도망을 나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하늘 사방의 바람과 같이 흩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사방의 바람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에 이어 네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방으로 흩으셨는데 이제 때가 되어 흩으신 백성들을 다시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땅에서 정신없이 도망치듯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또 다시 확인한다.
북방의 땅은 7절에서 바벨론 성으로 구체화된다. 바벨론 성에서 아주 급히 탈출하라는 것이다. 6절에서 사방으로 흩으셨다고 했기 때문에 북쪽 땅에서 도망하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지 급히 돌아오라는 뜻이다. 7절에서 바벨론이라고 한 것도 예루살렘 멸망 이후 고통을 당한 것의 전형으로 봐야 바벨론이라고 알려진 땅에 한정짓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네 개의 뿔로 비유된 사방에서 공격해온 대적들을 네 명의 대장장이들이 그 대적들을 박살 낸다고 했다. 또 6절에서는 네 방향의 바람으로 흩으셨다고 했다. 이렇게 계속 나온 넷이라는 말과 연결해 볼 때 바벨론에서 급히 탈출하라는 말도 사방으로 흩어진 백성들에게 급히 돌아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더구나 유다의 사방이 다 바벨론 제국의 영토였기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지도층들이 잡혀간 곳은 분명히 바벨론 제국의 수도였기에 바벨론에서 급히 피하라고 한 것이다.
8절 앞부분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렇게 급히 탈출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개역에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라는 말은 본래 "영광 뒤에 그가 나를 보내셨다" 라는 뜻이다. 영광이란 무겁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앞서가고 그 뒤에 너희를 노략한 나라들로 나를 보내셨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은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메시야를 보내셨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앞서 가시며 그 영광의 뒤를 따라 메시야를 보내셔서 그 백성들을 구하신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8절 끝 부분은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눈동자란 본래 "그의 눈의 사과들" 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눈의 눈동자들을 사과로 비유한 것이다. 눈동자는 사람의 신체 중에 가장 부드럽고 약한 부분이다.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아주 불편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최고로 화나게 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눈동자와도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느끼시기에 그 백성들을 건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눈동자들인 그 백성들을 건드리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9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눈의 사과를 건드린 자들에게 분노하시는 장면이다. 왜냐하면 내가 손을 그들 위에 흔들면 그들이 자기를 섬기는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지도 않고 단지 그들 위에 손을 흔들기만 해도 그들은 다 쓰러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눈의 사과를 건드린 자들은 그렇게 다 죽어버린 것이고 그들에게 노예살이하던 사람들은 그 시체들 사이를 뛰어 다니며 정신없이 전리품을 거둔다는 뜻이다. 그러면 만국의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너희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모형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10절은 "소리치며 기뻐하라, 시온의 딸아!" 라고 말씀하신다. 기쁨의 함성을 외치며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신 뒤 돌아오게 하셔서 그들 가운데 함께 터를 잡고 사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말이라고 했기에 분명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11절은 그날이 오면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가담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이방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은 새 언약의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도 이러한 예언의 성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수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만군의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알 수 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는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의 상징이지 오늘날 예루살렘 주변의 땅들이 아니다. 거룩한 땅이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거룩한 땅 하나님 나라에서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유다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소유라는 말은 대대로 영원히 물려질 유산이라는 뜻이다.
13절은 "쉿! 모든 육체들! 여호와 앞에서"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모든 육체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계시니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그가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스스로 일어나신다" 라고 했다. 이는 사람이 잠을 자고 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장면과도 같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는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일어나신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사야 51:9절에서도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기에 그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일어나시면 그 놀라운 권능으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랴도 역시 여호와께서 자신들 가운데 함께 사신다고 했는데 이제 일어나시면 자신들의 억울함을 모두 들어 주시고 대적들을 심판하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와 함께 주무시고 일어나신다. 그 영광의 불로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영광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사신다면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그 영광의 불로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영광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사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