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1:3-6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위해서는 화려한 집을 짓고는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가 안되었다고 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수고가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었다며 유다 백성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를 재건하도록 하셨지만 그 백성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물질과 시간으로 봉사하기를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이에 분노하여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3절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의 손을 통하여 왔다, 말씀하시길" 이다. 개역은 "손을 통하여" 라는 말을 살리지 못했지만 새번역은 이를 살려서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라고 번역했다. "손을 통하여" 라는 말은 학개가 전하는 하나님의 분노는 학개의 말이 아니고 학개가 주의 말씀을 받아 묵상한 결과도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한다는 뜻이다.
4절은 학개가 받아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다. 4절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되었다며 성전 짓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책망의 내용은 "그렇다면 이 때가 바로 너희들 자신을 위한 때이냐? 너희들은 잘 꾸민 집에서 살 때냐? 이 집은 쓰레기로 둔채?" 라는 뜻이다. 개역에서 "판벽한 집"이란 지붕을 판으로 덮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평범한 집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요나 1:5절에서 요나가 아래로 내려가 잠이 든 배도 같은 말에서 온 것이다. 이는 배의 갑판을 나무로 막고 그 아래에 화물을 넣어두던 먼 바다에 나가는 크고 화려한 배를 뜻하는 말이다. 열왕기상 6:9절에서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라고 할 때도 쓴 말이다. 이는 이러한 집이 가난한 대다수 사람들의 집이 아니라 부자들이 집을 짓는 방식을 두고 한 말이다. 이는 특별히 1:1절에서 나온 총독이나 대제사장의 집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는 솔로몬의 궁전처럼 우아하게 재건된 스룹바벨이나 여호수아의 집을 의미할 수 있다.
때가 아직 아니라면 텐트를 치고 살았어야 옳다. 때가 아니라는 말은 언제 다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건축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부유층들은 여호와의 성전은 쓰레기로 버려두고 자신들의 집은 이렇게 화려하게 지을 때냐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면, 지어도 다시 파괴될 것이니 소용이 없다면 자신들의 집도 그렇게 지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집은 이제 그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크고 화려한 집을 지으면서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5절은 "이제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든 군대의 대장이신 여호와가 말씀하신다면 어떤 강한 대적도 하나님께서 다시 모으신 백성들을 해칠 수 없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적이 쳐들어 올지 모르니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군대의 대장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집을 그렇게 짓는 것은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행위를 살필지니라" 라고 하신 것이다. 원어는 네 마음을 네 길 위에 세워두라" 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행한 모든 행위에 네 모든 생각들을 세워놓고 보라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뜻이다.
6절은 하나님은 믿지 못하겠다면서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을 구체적으로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첫째로 많이 뿌려도 적게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씨앗은 본래 적게 뿌리고 많이 거두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많이 뿌리고 적게 거둔다는 말은 그 농사 완전히 망했다는 뜻이다. 이제 거둔 것이 뿌린 것보다 적기에 내년에 다시 심을 것은 없다. 적게 거둔 씨앗을 먹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네가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먹으면 배가 부른 법이다. 그런데 배가 부르지 못하다는 것은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 네가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아무리 마셔도 계속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넷째 네가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의지하던 재물과 모든 노력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들 돌아온 예루살렘의 지배계층의 문제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신들이 중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세워주셔서 재물과 권력을 갖게 된 것인데도 그 모든 것들이 다 자신들이 노력해서 얻은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들 모두의 문제이다. 말로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고 한다. 말로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 한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믿지 못하겠고 내가 가진 돈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해변의 마른 모래를 손으로 쥐는 것과도 같다. 세게 쥘수록 더 많이 빠져나와 버린다. 이는 마치 밑이 완전히 뚫린 전대에 돈을 계속 집어넣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19-20절에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다. 모든 재물을 다 바치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자신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은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 다 쓰고 나서 하나님께 드릴 것은 남아있지 않자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20절에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