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19-20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되면 하나님 때문에 겪는 모욕을 견디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모으셔서 회복시키시고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회복시키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는 장면을 보여주며 스바냐가 끝이 난다.
19절은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너를 괴롭게 하는 모든 자들을 다룰 것이니 보라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그 때"이다. 그 때는 남은 자들을 괴롭히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은 2:3절에 나온 겸손히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이방 나라들 뿐만 아니다. 이들은 모든 이방나라 뿐만 아니라 3:3-4절에 나온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지도자들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남은 자들은 먼저 "저는 자"이다. 저는 자라는 말은 창세기 32:32절에서 야곱이 다리를 절었다고 할 때 썼다. 이들은 실제로 저는 자들이라기 보다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남아있던 자들을 유다의 하층민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또 이와 대조가 되는 쫓겨난 자들은 포로로 잡혀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남아서 괴롭힘을 당하던 하층민들이나 포로로 잡혀간 상류층들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을 찾는 겸손한 자들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온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던 자들이란 유다 땅의 하층민들이나 포로로 잡혀간 상류층들이나 상관없이 어디에 살든지 악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던 자들은 다 모으신다는 것이다. 모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칭찬과 명성을 얻는다는 말은 그동안 악한 자들에게 당했던 부끄러움의 반대말이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흩어져 있던 부끄러움을 당하던 겸손한 자들을 다 모아서 칭찬과 명성을 얻게하신다는 것이다.
20절은 "그 때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겸손히 여호와를 찾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때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오신다는 것이다. 이어서 또 다시 "그 때에" 라고 강조하시면서 그들을 모으시겠다고 하신다. 멀리 포로로 잡혀간 자들과 유다에서 압제 당하던 저는 자들을 다 한곳에 모으신다는 것이다. 19절에서는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신다고 했는데 20절에서는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칭찬이 바깥쪽 껍질이라면 그 안쪽의 알맹이는 명성이다. 명성이란 원어로 이름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하시는데 칭찬이라는 껍데기와 함께 얻게 하시는 것이다.
언제 그런 이름을 얻는가? 땅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너희 눈 앞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키실 때 그렇게 칭찬과 이름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칭찬과 명성은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칭찬하며 그 이름을 높이는 것이지 믿는 자의 행위 때문에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바냐가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받던 사람들도 이러한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는 상태에 있었다. 스바냐가 전한 회복의 말씀은 스바냐 당시 회복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회복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밖에 없다며 하나님 앞으로 겸손히 돌아오는 사람들은 세상을 믿고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하는 모욕을 참는 것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대로 장차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모욕을 참고 견디는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다 견디시며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셨기에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장차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를 모으시고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