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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스바냐 › 3:1-4

Dawn Word

스바냐 3:1-4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2021. 1. 18. · 안정섭 목사 · 스바냐 3장 강해 설교

스바냐 3:1-4 하나님께 대들고 따지며 사람들을 억압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화가 있다.

2:1-3절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오면 유다는 완전히 망할 터이니 망하기 전에 더 이상 세상 나라들에 피하여 숨지 말고 여호와께 피하여 숨으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2:4-15절은 유다가 피할 보호막으로 생각하는 사방 팔방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다 멸하시겠다는 경고였다. 이제 오늘 말씀은 다시 유다 중에서 예루살렘이 받을 형벌을 말하며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3:1절은 "화 있을진저! 패역하고 더러운 자여" 라고 외친다. 패역하다는 말은 본래 논쟁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옳지 않다며 따지고 대드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대들고 따지는 것이다. 자신들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위에 두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더럽다는 말은 본래 손이 피로 더럽혀졌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따지고 대드는 자들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을 더 높인 자들이기에 하나님께는 따지고 대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은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반역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손은 그들의 피로 더럽혀져있는 것이다.

1절 마지막은 이런 자들이 사는 도시를 "억압하는 도시!"라고 부른다. 이는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는 따지고 대들면서 자신들에게 따지고 대드는 지도자들은 다 죽여버린 뒤에 나머지 백성들은 짓누르고 억압한다는 뜻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일반 백성들을 사정없이 짓밟고 이들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께는 따지고 대들면서 사람들은 죽이고 짓밟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지도자들에게 카리스마가 있다며 복종하기에 이런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성은 오히려 조용하고 평안하게 보인다. 이들이 하나님이 되어 대적들은 다 죽여버리고 나머지는 억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반대의 의견도 들어주고 백성들도 힘으로 억압하지 않는 지도자들에게는 늘 대들고 따지고 불순종하는 자들이 있어 오히려 늘 시끄럽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자신들의 권위로 억압하는 지도자들이 능력있는 지도자라고 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저주가 있다고 하신다.

2절은 이러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대들고 따지는지를 말한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께 대들고 따지는 것은 둘 씩 짝지어진 두 쌍의 반역으로 되어 있다. 첫째 쌍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에 관한 것이다. 첫째 그가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원어는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충고나 교훈을 받지 않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나 군인들을 훈련시키듯 책망하시면서 반복해서 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뜻한다. 명령도 듣지 않고 반복해서 시키시는 말씀에 따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쌍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 중 첫째는 주님을 의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의지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품을 안전한 곳으로 여겨 몸을 기대고 맡긴다는 뜻이다. 위험할 때 하나님의 품으로 숨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께로 피하지 않는 것이다. 그 중 둘째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근처에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들고 따졌기에 가까이 가면 혹시 맞을지도 모르고 위험하니 근처에도 안가는 것이다.

3절은 이렇게 하나님께 대드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하는지를 말한 것이다. 그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라고 했다. 방백이란 본래 왕자들이란 뜻이다. 고대의 왕국은 왕족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자처럼 부르짖는다는 말은 사자가 잡아먹으려고 위협하는 장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그 재판관들은 이러한 왕족들 아래에 있는 통치자들이기에 이리 떼로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 떼들이라고 했다. 저녁에 배고픈 이리 떼들이 앞에서 사자가 사냥해서 먹고 남긴 것을 싹 다 먹어 치우는 장면이다.

3절은 정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말했다면 4절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행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개역은 선지자들이 경솔하다고 했다. 이는 교만하면서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선지자들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고 들었다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닥치는대로 뭐든지 다 하려는 본능적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이다.

또 선지자들은 간사하다고 했다. 간사하다는 말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말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유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제사장은 성소를 거룩하게 하는 사람들이고 죄인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하는 자들이다.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풍습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들여왔다는 뜻일 것이다. 사무엘상 2:22절에 보면 제사장인 엘리의 아들들은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고 했다. 어쩌면 스바냐 시대의 제사장들의 성적 타락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은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한 예배를 드리도록 안내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장소로 사용해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했다고 했다. 율법이란 대부분 구약성경의 모세오경을 뜻하는 말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 오경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도 않고 자신들도 그 말씀을 지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모든 말씀들을 다 지켜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제사장들은 여러 상황에서 어떤 희생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인지 규칙을 알려줘야 하고 율법을 어긴 죄인들을 속죄하고 다시 공동체의 예배로 돌아올 수 있게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은 그러한 권한을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와 이웃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저주를 선포한 말씀이다. 마태복음 22:24-40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 따지고 대드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까? 그것은 이웃 사랑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정확히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이고 나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1서 4:20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라고 했다. 여기서 형제는 모든 믿음의 형제들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잘 해주는 형제는 다 사랑한다. 이 형제는 자신을 대적한 원수이다. 우리 모두 함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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