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2:1-3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모두 다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여호와의 심판의 날은 손을 쓸 시간도 없이 갑자기 다가와 모든 것들을 다 멸하시고 다 태워버리신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날이기에 아무에게도 구해달라고 외칠 수도 없는 날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1절은 "너희 자신이 스스로 모여라 또 모여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같은 말을 너희 자신이 모이라고 한 뒤 또 다시 모이라며 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에서 모이라는 말은 "카샤스 " 인데 이 말은 밀이나 보리의 그루터기를 뜻하는 "카스"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이 담고 있는 그림은 밀이나 보리를 벤 뒤 짧은 밀짚이나 보리짚들이 군대가 모인 것처럼 밭에 가득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말은 밀짚이나 보리짚들처럼 흙먼지가 일어나는 땅바닥에 내려 앉아 회개하라는 그림을 담고있다.
누구에게 그렇게 땅바닥에 내려와 줄지어 모여 앉으라고 하는가? 이는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는라고 말이다. 수치를 모른다는 말에서 수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해나 달이 빛을 잃는 것이나 금속이 빛을 잃고 반짝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어떤 이는 은과 같은 금속이 빛을 잃는 것을 뜻한다며 죄에 대해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당황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ing James Version은 수치를 모른다는 말을 "O nation not desired"라고 번역했다. 이는 창세기 31:30에서 사모한다는 말로 쓰인 말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도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는 뻔뻔한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밀짚의 그루터기처럼 땅바닥에 내려와 모여 앉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용서해주시길 간절히 기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금속이 빛을 잃지 않는다는 뜻으로 설명해도 결국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높은 자리에서 반짝거리며 교만하고 수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1절 앞부분의 겸손히 땅바닥에 줄지어 모이는 것과 반대로 높은 자리에서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대조된다고 볼 수 있다.
2절은 "전에" 라는 말을 세번이나 반복하며 아직도 교만하고 뻔뻔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긴박감을 강조한다. 첫째는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밀짚 그루터기처럼 모여 엎드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 날이 겨처럼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모여 엎드리라는 것이다. 밀집 그루터기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땅에 뿌리박고 엎드리지 않은 교만한 자들은 모두 겨처럼 바람에 다 달아간다는 것이다. 셋째는 여호와의 불타는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이다. 여호와의 분노의 콧김이 너희 모두를 다 불살라 버리기 전에 회개하라는 것이다. 바람에 날아가는 겨가 이번에는 모두 불타버리는 그림이다.
3절은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한다. 누구에게? 땅의 겸손한 자들에게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한다. 땅의 겸손한 자들이란 1절에서 땅바닥에 줄지어 박혀있는 밀짚 그루터기와 연결되는 그림이다. 여호와께서 다 날려버리고 다 태워버리는 날이 오기 전에 겸손히 땅바닥에 엎드려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이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했다. 공의란 여호와께서 용서해주시고 무죄판결을 내려달라고 하라는 것이다. 또 겸손을 구하라는 말은 겸손히 엎드려 용서를 구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혹시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숨김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 날려버리시고 태워버리시는 날에 따로 숨겨놓고 날려버리거나 태워버리지 않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대조되는 그림은 땅바닥에 엎드린 겸손함과 스스로 높이 콧대를 세우고 버티는 교만함이다. 지금 우리도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 바람에 날려버리시고 다 태워버리시는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자.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귀하게 여기셔서 따로 숨겨두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