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1:4-6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을 멸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을 섞어놓고 섬기는 자들도 모두 멸하신다.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스바냐 첫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모든 자연 만물들과 함께 쓸어버려 창조 이전으로 되돌리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이러한 심판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4-6절은 1-3절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앞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4절은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겠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손이나 팔을 펴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 권능으로 손으로 일하신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서는 주로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그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경우에 썼다. 그러나 스바냐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권능의 손을 펴서 그 백성들을 멸하시겠다는 뜻으로 썼다.
예루살렘을 멸하시겠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다를 멸하시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은 멸해도 그 주변에 있는 유다를 남겨두면 거기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오고 예루살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의 중심이 된다. 더구나 창세기 49:10절에서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시기를" 이라고 했다. 열왕기상 11:13절에서도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라고 하셨다. 한 지파는 유다지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유다를 멸하시고 그 다음에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을 멸하신다고 하셨기에 충격적인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멸하실 우상숭배자들을 여섯으로 나누어 지목한다. 그 중 처음 세가지는 완전한 우상 숭배자들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운데 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첫째는 그 장소에 남아있는 바알의 남은 자들이다. 그 장소란 유다와 예루살렘이다. 바알의 남은 자들이라는 말은 스바냐 시대에 바알을 전적으로 숭배하는 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자들은 바알을 숭배하는 최정예 특수부대 대원과도 같은 자들이다.
둘째는 그 제사장들이다. 이들은 바알 숭배의 남은 자들을 이끌고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을 맡은 자들이다. 셋째는 지붕에서 하늘의 주인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군대를 거느리는 대장이 있다고 보고 그를 하나님 대신 섬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드러내 놓고 전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전적으로 드러내 놓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보다 더 악하고 파괴적인 사람들은 나머지 세 종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외투를 입었으나 실제로 그 속은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들을 교묘하게 뒤섞어 놓은 자들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우상을 교묘하게 섞어 놓은 자들 중 첫째는 여호와께 경배하고 맹세하면서도 아직도 밀곰에게 맹세하는 자들이다. 밀곰은 암몬 사람들의 신이다. 밀곰을 숭배한 것은 열왕기상 11:5절에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그들을 위해 그 신전을 세워준 것이 그 유래이다. 그러나 솔로몬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밀곰을 섬겼다는 증거는 없다. 단지 솔로몬은 암몬 여인을 아내로 삼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네가 믿는 밀곰을 섬겨도 좋다며 신전을 지어준 것 뿐이다. 오늘날 하나님과 밀곰이 섞이기 시작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나는 내 하나님을 섬길 것이고 너는 네 신을 섬겨도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우상이 뒤섞이는 출발점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교묘하게 섞어 놓은 자들 중 둘째는 여호와를 따르는 것에서 등을 돌린 자들이다. 이들은 앞서 나는 내신을 믿고 너는 네 신을 믿으라고 허용하기만 하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이제 여호와를 따르던 상태에서 등만 돌린 것이다. 그러나 몸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마음만 돌아선 것이다. 마치 처음에는 낙타가 "텐트 안에 코만 들여놓아도 될까요? 라고 했을 때 허용하자 그 다음에는 목도 들이민 것과도 같다.
하나님과 우상을 교묘하게 섞어 놓은 자들 중 셋째는 여호와를 찾거나 물어보지도 않는 자들이다. 찾는다는 말은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아와 예배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물어본다는 말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호와를 찾아와 예배를 하는 것은 또한 여호와께 아뢰고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다. 이제 등만 돌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떠난 상태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여호와를 찾지도 않고 찾아와 물어보지도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완전한 우상숭배가 아니다. 믿는 자들이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코를 들이밀 듯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세상적 탐욕과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낙타이다. 우리 마음에 조금씩 밀고 들어올 때 그대로 두면 점점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고 결국은 두 가지가 뒤섞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6:24절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 했다. 하나는 미워하고 하나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배우자도 사랑하고 정부도 사랑할 수는 없는 것과도 같기에 구약성경은 우상숭배를 간음에 비유한 것이다. 세상의 탐욕과 성공이라는 현대의 우상이 마음에 조금씩 파고 들어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노릇 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조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