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1:7-11 갈대아 사람들은 엄청난 군사력과 빠른 공격 속도와 탁월한 전략으로 주변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여 두려움을 주게 되자 자신들을 높여 하나님의 자리에 세웠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잔혹하고 빠른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서 온 세상을 정복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 모두 경악하게 될 것이라 했다. 이제 그 갈대아 사람들의 군대의 힘과 그들의 교만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7절은 먼저 그들이 두렵고 무섭다고 말한다. 두렵다는 말은 아가 6:4절과 10절에서 "엄위함" 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새번역은 "장엄함"으로 번역한 말이다. 아가에서는 깃발을 세우고 열을 맞추어 서 있는 군대 같다고 할 때 썼다. 갈대아 사람들의 군대들이 서 있는 모습을 눈으로 볼 때 두려움을 불러 일으킬 만큼 엄청나다는 뜻이다.
또 무섭다는 말은 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한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창세기 22:1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라고 말하며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라고 말할 때 경외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갈대아 사람들의 군대를 볼 때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 앞에 엎드리기를 마치 하나님 앞에 엎드리듯 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개역개정은 "당당함과 위엄이 자들에게서 나오며" 라고 의역을 했다. 개역은 "심판과 위령" 이라고 번역했는데 개역이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새번역은 "정의와 권위" 라고 번역했는데 새번역은 직역을 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기 쉽도록 번역했다. 심판이나 정의로 번역된 말은 법정에서 올바른 재판을 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공정하고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들을 뜻하는 말로도 쓰였다.
위엄이나 권위로 번역된 말은 높이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창세기 4:7절에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고 할 때 얼굴을 높이 든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당당하게 고개를 높이 든다는 뜻이다. 신이나 왕으로부터 특별한 권위를 부여 받은 사람이 고개를 높이 드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과 그 권위가 자기들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했으니 자기들 군대의 힘으로 재판을 하고 그 권위를 높이 세운다는 뜻이다. 새번역은 원어의 단어들을 그대로 직역하면서도 그 의미를 잘 살려 번역했다.
그들의 재판과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8절에서 설명한다. 먼저 그들이 부리는 말은 표범보다 빠르다고 했다. 사실 전력질주 한다면 경주마가 표범보다 더 빠르다. 하지만 히브리 사람들은 말을 농사 일에나 짐을 나르는 데 썼기 때문에 한 말이다. 먹이를 잡으려고 달리는 표범은 37마일 정도 속도로 달리기에 엄청나게 빠른 것처럼 본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의 군마들은 사람을 태우고도 표범처럼 빠르게 달린다는 뜻이다. 또 저녁 이리보다 사납다는 말은 굶주린 이리들이 사냥할 때 모습을 그린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이리들은 해 질 무렵에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굶주렸기에 그 먹이들을 잡는 모습은 정말 사나운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8절 뒷부분은 먼저 "그들의 기병들은 달려온다. 먼 곳에서 그렇게 달려온다" 이는 8절 앞부분의 표범보다 빠르다는 말을 설명한 말이다. 또 이어서 "마치 먹이를 삼키려는 독수리의 날음 같으니라" 라고 했다. 이는 8절 앞부분에서 저녁 이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다른 말로 다시 설명한 것이다. 먹이감을 발견하고 내려오는 독수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내려온다. 갈대아의 군대들이 그렇게 사납고 빠르게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악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이다.
9절은 다 폭력을 휘두르러 온다고 말한다. 시편 7:16절은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라고 할 때 "포악" 이라는 말이 폭력과 같은 말이다.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화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폭력이라는 말은 칼을 휘두르거나 화살을 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앞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말은 그들의 떼거리들은 동풍처럼 나아간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갈대아 사람들이 동쪽에서 오기 때문이다. 동풍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기에 모든 곡식들과 푸른 풀들을 다 말라 죽게 만든다. 그처럼 갈대아 사람들의 떼거리가 지나가면 다 죽는다는 뜻이다. 또 포로들을 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한다고 했다. 사막에 있는 모래알처럼 많이 잡아 모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죽거나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10절은 그렇게 공격하여 다 죽이고 포로로 잡은 뒤의 장면이다. 그들은 왕들을 멸시한다고 했다. 열왕기하 2:23절에서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에게 대머리라고 조롱했다고 할 때도 같은 말을 썼다. 갈대아 사람들이 모든 나라들을 그렇게 정복한 뒤 왕들을 그렇게 조롱한다는 것이다. 또 왕들 아래에 있는 통치자들을 비웃는다고 했다.
이들은 왕과 그 통치자들만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아니다.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는 흙 언덕을 쌓아서 점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앞에서는 어떠한 견고한 성들도 단순히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보다 더 높이 벽을 쌓아서 성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납고 빠를 뿐만 아니라 전술과 전략에도 정말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다. 11절은 원어에서 "바람처럼 급히 몰아"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바람처럼 다 쓸어간다는 뜻이다. 10절 끝부분의 견고한 성들도 비웃는 것과 연결된 말이다. 닥치는대로 다 쓸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정복해 나가면서 계속 성공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세워주셨다는 것을 잊고 자신들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경에 번역된 70인역 구약성서는 바람처럼 쓸어버린다는 말을 "영" 즉 "생각을 바꾸었다"라고 번역했다. 바람이라는 말이 영이나 생각으로도 번역되기 때문이다. 70인역 구약성서는 이 부분을 직역하지 않고 자신들이 이해한 의미로 번역한 것이다. 70인역 구약성서의 번역을 따른다면 11절은 논리적으로 잘 연결이 된다. 계속해서 성공하게 되자 이들은 생각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그들은 범죄하리라" 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범죄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위치로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11절 마지막 부분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 이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마지막 11절에 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세우셔서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하던 유다를 심판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도구인 바빌론은 자신들이 엄청난 군사력으로 이웃 나라들에게 공포감을 주며 계속해서 성공하자 생각이 바뀌어 자신들의 힘이 하나님이 된 것이다.
잠언 16: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 라고 했다. 반대로 15:3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성공하게 되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어 자신이 이루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렇게 자신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고 멸망의 지름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반대로 여호와의 지혜의 훈계를 따라 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로 서게 되는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