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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나훔 › 3:1-4

Dawn Word

나훔 3:1-4

속임수와 우상숭배로 이웃을 망하게 한 자를 심판하신다

2020. 12. 17. · 안정섭 목사 · 나훔 3장 강해 설교

나훔 3:1-4 하나님께서 피와 거짓과 약탈로 얼룩진 니느웨를 완전히 멸하시는데 이는 속임수와 우상숭배로 이웃 나라들을 멸망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병거들을 완전히 없애시고 그 용사들도 다 없애시며 모든 먹을 것을 다 없애셔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니느웨가 공격을 받아 멸망하는 장면을 다급한 목소리로 짧게 끊어 외쳐 알리고 있다.

1절은 "아!" 라고 탄식하는 소리로 시작한다. 이 감탄사는 주로 선지자들이 심판의 말씀을 전할 때 시작하는 말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사야는 이 말을 22번이나 사용했고 예레미야와 다른 선지자들도 여러 번 사용했다. 나훔은 니느웨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는 비참한 장면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외치는 것이다. 이 비명은 주로 통곡으로 이어지는 비명이다.

나훔은 첫째로 니느웨를 "피의 성" 이라고 부른다. 앗시리아는 군대를 동원해서 수많은 이웃 나라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약하거나 쉽게 점령할 수 있을 때는 그렇게 군대를 동원해서 닥치는대로 죽이고 불지르고는 빼앗아 갔다. 니느웨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피를 통해 약탈을 한 것들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갔기 때문에 한 말이다.

둘째로 "거짓이 가득한 곳"이라 부른다. 이는 본래 몽땅 다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하박국 3:17절에서는 올리브 나무에 딸 것이 없다고 할 때도 쓰인 말이다. 올리브 나무가 그 잎은 있는데도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으면 그것이 속이는 것이다. 앗시리아 왕은 열왕기하 18:31-32절에서 앗시리아 왕 랍사게는 히스기야 말을 듣지 말고 항복하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와 꿀이 있는 곳에서 살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파괴하고 죽이고 남은 사람들을 잡아갔다. 쉽게 정복하기 어려울 때는 거짓말로 속여서 정복하고 다 빼앗아간 것이다.

셋째로 "강포가 가득하며" 라고 했다. 이는 강제로 빼앗아가는 것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피나 거짓말로 정복을 한 뒤 강제로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간다. 그래서 그 노략질은 끝이 없다고 한 것이다. 니느웨 성은 피로 건축된 성이고 그 안은 모두 거짓말과 노략질로 가득 채운 것이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2-3절은 니느웨의 거리가 혼돈과 공포로 가득한 장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소리와 장면으로 전달한다. "휙휙하는 채찍소리! 윙윙하는 병거 바퀴 소리!" 라는 말은 본래 "채찍의 목소리! 요란하게 울리는 바퀴의 목소리!" 라는 뜻이다. 적군이 니느웨 성 안에 들어와 채찍으로 말을 계속 휘갈기며 정신없이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을 나타낸 말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뛰는 말 달리는 병거" 라는 말은 소리보다는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채찍을 맞은 말은 정신없이 달린다. 병거도 펄쩍펄쩍 뛴다는 뜻이다. 도로가 오늘날처럼 평평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아니고 타이어도 없이 나무와 철로만 만든 병거는 빨리 달리다 보니 계속해서 공중을 날다가 땅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는 장면이다. 말도 정신없이 뛰고 병거는 예전에 시골 비포장을 달리던 버스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펄쩍펄쩍 뛰는 장면이다.

어째서 선지자는 그 소리와 그 장면을 이처럼 생생하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일까? Barker는 나훔이 전하는 말씀은 니느웨의 멸망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그 말씀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묘사함으로 예루살렘의 사람들도 니느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Barker, 222). 나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직접 보는 것처럼 들려주려는 것이다. 이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불순종하면 그렇게 심판하신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3절도 계속해서 소리대신 움직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역에서 충돌하는 기병들이라는 말은 기병들이 올라온다는 뜻이다. 2절에서 소리와 움직이는 모습으로 전달한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달려 올라온다는 뜻이다. 이어서 번쩍이는 칼이라는 말은 불타는 칼이란 뜻이다. 칼을 빠르게 휘두를 때 햇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이 마치 이글거리는 불꽃과도 같다는 뜻이다. 또 번개같은 창이라는 말도 창들이 움직일 때마다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이다. 이는 수많은 창과 칼들을 휘두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륙하는 장면이다.

이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이 순서대로 묘사된다. Robertson은 시체를 나타내는 세 단어의 의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살륙 당한 떼라는 말에서 살륙당했다는 말은 창이나 칼에 찔려 죽어가거나 크게 부상을 입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또 무수한 시체들이라는 말은 부상을 입은 사람이 힘이 빠져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에서 시체라는 말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러져 있는 시체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말한다(Robertson, 106). 그렇게 본다면 수많은 니느웨 사람들이 칼이나 창에 찔려 고통 속에서 버티다가 무너져 내려 땅바닥에 쓰러지고 죽어서 차디찬 시체로 변하는 장면을 동영상처럼 묘사한 것이다.

4절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구절이다. 이는 무수한 창녀가 창녀 짓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창녀가 가난하고 힘도 없는 남자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게 하고 가진 것을 다 빼앗아 완전히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Barker와 Johnson은 앗시리아가 수많은 군대를 보내 약한 나라를 도와주겠다고 유혹한 뒤 다 빼앗고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라 했다(Barker, 223; Johnson, 1502).

그러나 무수한 창녀의 비유는 앗시리아가 군대로 이웃 나라들을 유혹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훔은 또한 이 창녀들이 정말 아름다운 마술을 하는 여자라고 했다. 이 창녀는 또한 단순히 창녀가 아니라 앗시리아의 주요한 신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 막중한 임무를 맡은 여자들이다. 나훔은 Ishtar라는 섹스와 전쟁의 여신을 섬긴 것을 그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다. 앗시리아는 군대 뿐 아니라 이러한 우상을 숭배하게 해서 많은 나라들을 홀리는 창녀 짓을 했다는 것이다. 나훔은 창녀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이러한 두가지 죄를 정교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앗시리아를 멸망하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을 받던 사람들은 앗시리아 사람들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루살렘과 유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게 창녀에게 넘어가 그 군대를 의지하고 그들의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겨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군대의 힘과 같은 권력과 화려한 삶과 쾌락으로 믿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세상은 그런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며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 잠언 7장에도 음녀가 젊은이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한 음녀를 따라가는 젊은이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고 말한다. 믿는 자들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의 유혹을 따라 사는 것도 오늘 말씀에 나온 앗시리아에 속은 나라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따라가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모든 일이 잘되게 하시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성경은 둘 다 섬기려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믿는 자들이 오늘 말씀에 나온 앗시리아와 같은 유혹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두 완전히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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