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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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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1편

시편 141편도 다윗의 시이다.

2017. 8. 30.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시편 141편 강해 설교

시편 141편도 다윗의 시이다. 다윗이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도이다. 하지만 악인들이 벌을 받게 해 달라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자신이 그들의 악함에 물들지 않게 해 달라는 데 초점이 있다.

I. 내 기도를 들어 주세요(1-2)

먼저 1-2절은 기도를 들어 달라는 간구이다. 1절은 세가지 말의 순서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불렀사오니” 이다. 다윗은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다. 다음 순서는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라는 말이다. 간절히 불렀기 때문에 서둘러서 와 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 순서는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내 부르짖는 목소리에 귀를 달라는 말이다. 한국말 식으로 한다면 귀 좀 빌려주세요 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1절에서 하나님을 부른 이유는 귀 좀 빌려달라는 것이다.

2절은 1절에서 귀좀 빌려달라고 한 뒤 자신이 드리는 두가지 기도를 받아 달라는 부탁이다. 첫째,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 분향함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숫양을 잡아 드리던 번제의 연기를 말한다. 자신의 기도가 번제의 고기타는 냄새처럼 하나님 얼굴 앞에 전달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 “나의 손을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이다. 출애굽기 29:41절을 보면 저녁 예물이라는 말은 번제에 이어서 곡식제물을 태워드리는 것이 나온다. 다윗은 자신이 저녁에 드리는 기도를 제사장이 저녁에 번제를 드리고 곡식제물을 태워 드리는 제사의 향기에 비유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하루에 두번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로 받아들여지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욕심을 구하면 안된다. 번제와 곡식제물의 향기처럼 되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II. 간구의 내용(3-6)

이어서 다윗이 간구한 내용이 3절부터 나온다. 3절의 간구는 “세우시고” 와 “지키소서” 이다. 원어에 먼저 나온 것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원어는 입 위에 세워달라는 것이다.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려면 파수꾼은 공중부양을 해야 하기에 약간 튀어나온 입 위에는 세워달라고 한 것이다. 입 위에 파수꾼을 세운 다음에 해 달라는 간구는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이다. 감옥의 문을 지키는 파수꾼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지키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파수꾼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 입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다윗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것은 결국 자신의 입술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입술의 문을 지키는 이 파수꾼은 좋은 말들은 나가도록 허락을 하지만 나쁜 말들은 절대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이다. 다윗은 대적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기에 대적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보내셔서 자신의 입술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의 입에서는 똥물과 같은 분노와 저주의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먼저 자신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지켜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왜 이런 기도를 하는가 하면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복된 기도를 드린 뒤에 자신의 입에서 저주와 분노가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수도꼭지에서 생수가 나오다가 똥물이 나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똥물로 더럽혀진 입으로는 다시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수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입술 위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입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더러운 입을 막고 입구를 잘 지키는 것이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다.

4절은 3절의 기도가 더 깊어진 것이다. 더러운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한 다음에는 더 깊은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이다. 더러운 말이 나가지 못하게 막아 주신다음 그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셔서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 다음에 지켜야 할 것은 마음 속에 숨어있는 태도이다. 자신의 마음이 악한 자들이 행하는 악한 일에 관심 조차도 갖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관심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는 악한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만약 마음이 이미 그렇게 악한 자들에게 기울어졌다면 악한 자들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한번 행동을 성공적으로 같이 해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먹는다는 말은 원래 전투에 참가한다는 뜻이다. 전투에 동맹군으로 함께 참석한다는 것은 앞에서 한번 같이 악한 일을 한 것보다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이제는 정말 친해져서 함께 목숨을 건 전투도 함께 하는 전우가 되는 것이다. 악인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는다는 말은 악인들과 아주 친해져서 그들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잠언 6장 24-35절에 나오는 음란한 여인에게 사냥을 당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잠언 6:25절에는 “네 마음이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라고 했다. 이는 오늘 시편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는 것과 같다. 간음의 시작은 먼저 악한 일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기울어지면 그 다음에는 그 음란한 여인과 한번 잠자리를 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오늘 시편에 나온 것처럼 악한 일을 한번 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음란한 여인과 아주 가까워져서 계속해서 아주 깊은 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것은 오늘 시편의 악인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음행은 4절의 악행을 잠언 6장의 간음하는 자에 비교한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먼저 마음이 기울어지면 그 다음에는 한번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악인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로 발전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엔 악인들과 아주 깊은 관계가 되어 계속적으로 악한 일들의 잔치를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5절은 4절의 세단계로도 막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음에서 한번 행동으로 실행했다가 지속적인 관계로 계속될 경우에라도 늦지 않았으니 책망해 달라는 것이다. 그 책망은 의인으로 하여금 나를 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치는 도구는 개역개정에서 “은혜” 라고 했는데 원어는 한결 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이다. 한결 같은 사랑의 망치로 머리를 때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머리를 때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책망해 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도” 라고 했다. 말씀의 망치로 머리를 때릴 때 그 말씀의 망치를 기름으로 여겨서 거절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 시대의 히브리 사람들은 가장 존귀한 손님을 초대했을 때 환영의 의미로 기름을 발라주었다. 시편 23:5절에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5절에서 의인이란 하나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한결 같은 사랑의 말씀으로 자신을 책망하시면 그것이 자신을 최고의 귀빈으로 환영해주는 기름과도 같이 여겨 거절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책망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게 해달라는 이유가 5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도는 아직도 악한 자들의 행동을 항상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악한 자들의 행동을 계속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악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행여 악인들처럼 행동할지라도 자신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책망해 달라는 것이다.

6절에서는 악인들의 우두머리가 망하는 내용이 나온다.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라는 말은 아주 큰 바위 절벽 꼭대기에서 “으아악, 쿵!” 하고 떨어져 박살이 났다는 뜻이다. 그제서야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이다” 라고 했다. 그들은 악인들의 최고 통치자들이 박살나는 것을 보고야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다윗에게 와서 다윗이 옳다며 다윗과 함께 기뻐한다는 것이다.

III. 위험에 빠지지 않는 비결(7-10)

7절은 6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6절에서 높은 바위 절벽에서 떨어져 그 바위 곁에 박살이 난 통치자들의 그림과 이어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건조한 사막에서 땅은 돌처럼 단단해진다. 그러한 땅을 갈아서 부수는 것처럼 우리의 해골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것이다. 이 땅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말이다. 돌처럼 딱딱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산히 부서져서 스올의 입구에 흩어진 해골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 악인들과 함께 행동하던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은 자신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가 아니다. 예언은 회개하고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제로 돌처럼 딱딱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기에 나중에 산산히 부서졌다. 이스라엘의 해골들이 스올 입구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하나님께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저들의 머리를 때렸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올의 입구란 스올의 입이다. 3절에서 내 입이라는 말에서 입과 같은 말이다. 스올의 입 주변에 더러운 해골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3절의 더러운 말을 하는 입과 겹쳐지면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더러운 말 악한 말들을 하는 입들은 마치 수많은 시체들을 잡아 삼켜 그 부스러기 해골들이 흩어져 있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더러운 것을 토해놓은 개의 입 주변에 더러운 찌꺼기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더러운 말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마귀의 밥이다. 그래서 마귀의 입 주변에 더럽게 붙어있는 해골 부스러기처럼 되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단계별로 경고하고 막아 주셨는데도 끝까지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을 그림처럼 그린 말이다.

이처럼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스올의 입 주위에 산산조각내신 하나님을 보고 다윗이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 8절이다. 그래서 8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내 눈이 주께 향하는가 하면, 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이라 했다. 다윗 앞에 줄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스올의 밥이 되어 스올에 떨어지고 그 부스러기인 해골이 사방에 흩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눈을 들어 하나님의 눈을 바라본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 피한다 했다. 그러니 자신의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라고 했다. 빈궁하다는 말은 원래 벌거벗겨졌다는 뜻이다. 다윗 앞에 벌거벗고 줄을 서서 마귀의 밥이 되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도 다윗 자신도 벌거 벗은 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런 보호막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 그 옷자락으로 가려달라고 하려고 하나님께 피한다 한 것이다.

이제 9절은 하나님의 품에서 그 부끄러움이 가리워진 채 보호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벌거벗었던 다윗은 하나님의 옷자락으로 그 부끄러움을 가리고 “나를 지키사” 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는 지켜달라고 외치는 외마디 비명이다. 원수들이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지켜 달라는 것이다.

한글성경은 개역과 새번역 모두 덫이 먼저 나오고 함정이 나중에 나온다. 하지만 원어에서는 함정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덫이 나온다. 먼저 지켜달라는 것은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함정은 땅 위를 걸어 다니는 들짐승들을 잡기 위해 땅에 묻어 놓은 큰 항아리 같은 것이다. 이는 행위가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또 덫은 날짐승들을 잡는 그물 같은 것이다. 이는 악인들이 쳐놓은 그물에 자신의 말이 걸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로나 말로나 악인들에게 걸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4절에서 악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 마음이 기울지도 않고 악한 일을 하지도 않고 그들과 함께 친밀한 관계도 갖지 않다 보니 이제는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아서 다윗을 잡아 죽이려는 것이다. 다윗은 저들의 함정이나 덫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품에 숨어서 얼굴만 내밀고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모습이다. 이는 계속 하나님 품에 안긴 채 함정도 통과하고 그물도 지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한글 번역에는 알 수가 없지만 원어에서는 5절의 “항상” 이라는 말이 10절의 끝부분에 있다. 5절에서는 항상 악인들을 고발하는 기도를 드리겠다 했다. 그런데 10절에서 나만은 항상 면하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다윗이 항상 고발하고 자신은 항상 면하게 해 달라고 한 것은 자신은 그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도 악을 행하면서 항상 남을 고발하는 기도는 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악인들의 함정과 덫에 빠지지 않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시편 141편을 보면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도 어려움 가운데 있을 수 있지만 다윗처럼 멸망하지 않은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를 숫양의 제물과 곡식제물을 태워 드리는 향처럼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반드시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제 경우엔 아침 기도는 길게 하고 저녁 기도는 아주 짧게 하는 편이다. 하루 중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올려 드려야 한다.

그 기도는 우리의 입을 지켜달라는 기도이다. 절대로 더러운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남을 비방하는 말이나 남을 해치는 말을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남의 욕을 하는 것이나 남을 비방하고 깎아 내리는 말들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더러운 말 중독은 늘 간음을 일삼으며 새로운 성관계를 찾는 바람둥이와도 같이 헤어 나오기 어렵다. 마약쟁이를 강력하게 끌어 당기는 마약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의 입술 위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다.

입술만 지켜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도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마음 속에는 악한 생각들이 가득한데 입만 억지로 닫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음행을 하지 않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보고 마음이 기우는 것부터 막아야 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안에 남을 비방하고 과거를 들추며 깎아 내리고 싶은 증오심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대신에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게 해 달라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입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더러운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지킬 수 있다.

이미 남에 대해 악한 말을 하고 있다면 당장 중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만약 습관적으로 그러한 말들을 즐기고 있다면 계속해서 남의 배우자와 간음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사람과도 같다. 당장 중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중단하지 않는 사람은 벌거벗겨진 채 마귀의 식사가 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악인들과도 같다. 곧 스올의 입의 이빨에 박살이나 그 몸뚱이는 스올의 바닥에 떨어지고 해골만 박살이나 그 입 주변에 흩어지는 꼴이 된다. 당장 그러한 더러운 말들에서 도망치라 벌거벗은 채로 정신없이 도망치라. 그래서 주님 품에 숨으며 보호해 달라고 하라.

남을 흉보고 과거를 들추어 깎아 내려도 우리가 높아지고 거룩해 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귀에게 속아 함정에 빠지고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해야 한다. 우리의 입에도 항상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하자.

사진출처: Keesler Air Force Base/Senior Airman Anthony Wilson

구글검색한 사진인데 우리 교회 바로 담 옆에 붙어있는 부대가 나왔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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