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시편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시편 1편이나 23편이라고 대답한다. 본인은 이 시편들이 읽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주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다른 시편들도 많이 나왔을 것이다. 다른 시편들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적 거리 때문에 그림언어(imagery)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편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 전체가 그림언어로 가득 차 있다. 불과 한세기 전만 해도 전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말로 의사소통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글이 없이 말로 의사소통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그림언어들을 사용했다. 그림언어로 마음 속의 공책에 적어두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림 언어들은 특히 시편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시편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림언어의 이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은 대부분 숨은 그림이다. 원어의 문법과 구문론과 성경의 문화와 역사와 고대의 수사법등을 깊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그 숨은 그림을 찾을 수가 없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시편 1편에는 두가지 그림이 대조되어 있다. 하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에 날리는 겨이다. 여기서 중요한 그림 하나를 놓치기 쉽다. 심었다는 말은 사실 옮겨 심었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수동태이기 때문에 옮겨 심어진 나무이다.
한국에서는 적당한 강수량과 기온 때문에 어디서나 나무가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옮겨 심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하지만 겨울철에 비가 내리고 나머지 건기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아챈다. 원래 이 나무는 와디라 불리우는 건천의 가에서 싹이 나서 자랐을 것이다. 건천은 겨울철 우기에는 물이 흐르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이다. 와디가에 떨어진 씨앗은 와디의 물을 빨아들이며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 오면 비가 그치고 와디의 물은 점점 말라 가면서 나무도 역시 말라 죽게 된다. 이런 나무를 발견하고 아깝게 여겨 캐어다가 항상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 가에 옮겨 심는 그림이 바로 시편 1편이다.
복있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물가에 심겨져서 비와는 상관없이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된다. 항상 변함없이 흐르는 시냇물은 하나님 말씀을 나타낸 그림일 것이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조언을 따라 걸어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대신 오로지 여호와의 율법을 증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여기서 걷는다 선다 앉는다는 것도 역시 그림언어이다. 악인이란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들의 생각과 욕심에 따라 사는 자들이다. 죄인이란 행동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다. 오만한 자란 지혜로운 자의 반대말로 하나님의 지혜를 비웃는 자들이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점점 더 악해지는 점층법이다. 악한 자들의 부정한 길 위를 걷는 것에서 서 있는 것으로 발전하고 또 주저앉아 터잡고 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삶이다. 이 그림은 부정한 삶에 점점 더 많은 시간 노출되는 그림으로 역시 점층법이다.
묵상이란 말은 글이 없던 시편 당시 사람들이 들은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것을 말한다. 항상 말씀을 중얼거리며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항상 흐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도 같은 것이다. 항상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저절로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반대의 그림은 바람에 나는 겨이다. 곡식을 타작해서 바람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낸다. 그러면 쭉정이는 가볍기에 멀리 날아가고 알곡은 바로 아래로 떨어진다. 바람에 나는 겨란 바람으로 멀리 날아간 쭉정이이다. 모아서 불에 태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악인들은 의인들의 반대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듣고 기뻐하지 않는다. 잊지 않으려고 계속 암송하지도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설교가 조금만 길면 지루해 어쩔 줄 모른다. 성경공부 모임에서도 조금만 길어지면 시계만 들여다 본다. 하나님 말씀이 기쁨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들어있지 않고 덧없는 세상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세상 욕심들은 덧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같기에 그런 사람들은 결국 빈 껍데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6절은 의인과 악인의 비교이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가 아닌가 이다. 인정하신다는 말은 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순종하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들을 보고 기뻐하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신다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이다.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dlife_of_Libya)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Yqla9JzX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