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성경이 어디냐고 물으면 많은 성도들이 잠언이라고 대답한다. 교회 처음 나온 사람들도 바로 공감하는 성경이 잠언이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조차도 좋아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잠언을 잘못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잠언은 단순히 세상 지식이나 철학처럼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잠언의 서론인 오늘 말씀을 보면 잠언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서론의 마지막 부분은 1:7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이라고 했다. 따라서 잠언 전체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데서 시작한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세상의 창조주이고 세상의 주관자가 아니다. 엄청한 능력을 갖고 계시기에 두려워 떨며 경배할 대상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다. 잠언을 통해 우리가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살까? 잠언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 주신 모든 자연 만물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믿는 이웃들과 믿지 않는 이웃들과 심지어는 동식물과 땅과 바다까지도 우리는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옆으로는 이웃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잠언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
먼저 1:1절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소개한다. 다윗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이다. 2-4절은 이 잠언을 주신 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2절을 보면 이 잠언을 주신 목적은 첫째로 알게 하려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수집한다는 뜻이다. 알게 하려는 것은 지혜와 훈계이다. 지혜란 삶의 경험을 근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뜻하는 말이다.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것이나 항해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를 운항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이 말이 구약성경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살아가면서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른지 아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우리 삶의 항해사이지 선장이 아니다. 선장은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 예수님이시고 우리 성령님이시다. 일천한 우리의 경험만으로 키를 돌려서는 안된다. 엄청난 삶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한다. 그 앎을 바탕으로 우리는 키를 잡고 하나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한다.
또 훈계라는 말은 가르치는 권위를 지닌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반복해서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잠언의 첫번째 목적은 지혜와 훈계라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른지 구별하는 지혜를 수집 하는 것이다. 언약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반복하여 훈련하는 훈계가 무엇인지 수집 하는 것이다. 훈련이란 가르치는 자의 막대기로 징계를 받으며 받는 것이다.
이 잠언을 주신 둘째 목적은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경험을 통해 바른 지혜와 훈계를 수집하는 것이라면 깨닫는다는 말은 수집한 지혜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고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 귀한 보석을 수집하는 단계에 비유한다면 깨닫는 것은 수집한 보석 중에 어떤 보석이 더 귀한 것인지 눈으로 자세히 관찰해서 비교해 보고 가장 귀한 것을 골라 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미 배운 지혜와 훈계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귀한 것들인지 묵상하며 비교하는 것이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깨닫는 것은 명철의 말씀이라 했다. 따라서 이미 얻은 지혜와 훈계중에서 어떤 것이 명철의 말씀인지 돋보기를 보고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철이란 말은 깨닫는다는 말과 같은 말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원어를 직역하면 “깨달음의 말씀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처럼 한 문장에 나온 동사와 명사가 같은 어근에서 온 것일 때는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귀한 지혜이고 훈계인지 분별하는 도구는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이 잠언을 주신 셋째 목적은 3절에 나온 “받게 하며” 이다. 이 말은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다. 이는 주로 배우는 자가 가르침을 받을 때 쓰는 말이다. 배우는 학생은 받은 가르침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지 골라 낸 것과 연결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부모와 율법교사가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다. 이들은 수집한 지혜와 훈계를 스스로 묵상하여 가장 귀한 것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먼저 가장 귀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고 골라내서 항상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또 자신만 가지고 다닐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도 그 말씀을 전해 주어 항상 가지고 다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것은 항상 기억하고 다닌다는 뜻이다. 항상 지니고 다닐 것은 훈계인데 1절의 훈계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항상 지갑과 휴대전화 갖고 다니는 것처럼 골라낸 가장 귀한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다니면서 반복해서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해야 할 훈련은 세가지를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다. 그 세가지는 정의와 공평과 정직이다. 첫째 정의란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뜻이다. 고대의 재판이란 단순히 오늘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이 아니라 전반적인 통치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정의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은 버리고 옳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스릴 때 올바른 쪽을 선택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의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행할 수 없다. 그래서 둘째로 공평이 나온다. 공평이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명하신 재판 기록을 보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평이란 내 기준에 옳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기준에 옳은 것이다.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것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공평한 판단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정직이란 본래 고르다 평평하다는 뜻이다.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길을 곧게 한다는 뜻이다. 왕이 오실 때 장애물을 없애고 평평하게 만든다 할 때도 이 말을 썼다. 이 말이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마음에 장애물을 없앤다는 뜻으로 비난 받을 일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마음 안에 울퉁불퉁 삐쭉 빼쭉 튀어 나온 것이 하나도 없게 한다는 뜻이다.
Brown-Driver-Briggs 히브리어 사전에 보면 포도주를 따를 때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말한다고도 했다.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찌꺼기 포도주를 잔에 따른다면 덩어리에 걸려 울컥울컥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포도주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포도씨나 포도 껍질이나 과육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이 맑게 걸러진 투명한 붉은 포도주가 가죽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그림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주 매끄럽다는 뜻이다. 이는 흠잡을 데 없고 걸리는 것 없는 삶으로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지혜롭게 행할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잠언을 주신 네번째 목적은 4절에 나온다. 4절은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라고 했다. 4절의 ‘하며’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준다는 말이다. 슬기로움은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이다. 이는 3절의 받는다는 말과 반대말인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란 단순하다는 뜻이다. 단순하다는 순진하다는 뜻이 아니고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이는 주로 17세 이전의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슬기로움을 준다 했다. 슬기롭게 한다는 말은 좋은 의미로 쓰일 때는 신중함(prudence)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나쁜 의미로 쓰일 때는 교활하다(shrewdness)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어수룩한 사람의 반대말로 쓰인 것이므로 단순해서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신중해서 속아 넘어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또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준다 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나이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준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란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은 앞에서 말한 쉽게 속아 넘어가는 단순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에겐 삶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준다는 것이다. 지식이란 말은 경험을 통해서 배워 안 지식을 뜻하는 말이다. 천막이나 집을 지을 줄 아는 지식 같이 경험을 통해 배운 지식을 말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게 한다는 뜻이다.
또 이들에게 주는 분별력을 준다 했다. 분별력이란 히브리어로 ‘므찌마흐’ 인데 목적이나 음모를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상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척보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뿐 아니라 왜 뭐 하려고 만들었는지도 다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므찌마흐는 한국어의 ‘묻지마’ 라는 말을 히브리인들이 소리나는대로 받아 적은 말인 것 같다(참고: 우리 성도님들은 이 부분에서 웃었음). 묻지 않아도 만든 목적과 숨겨진 음모까지 한눈에 다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예를 든다면 요리를 아주 잘하는 최고의 쉐프라면 어떻게 요리했는지 묻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상대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 아는 것이다. 아무리 특별한 양념을 쓴다 해도 맛을 보면 다 분별해 내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겐 이러한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분별력을 준다는 것이다.
5-6절은 이 잠언이 누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말한 것이다. 5절에서 “지혜있는 자는 이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라고 했다. 원어는 “지혜있는 사람은 듣게 하라 또 학식을 더하게 하라” 라는 뜻이다. 듣게 하라는 말은 듣고 싶어 자발적으로 듣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지식을 늘려준다는 것이다. 2절에서 지혜와 훈계를 알고 명철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 5절에서는 지혜를 더 얻게 하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성경공부 많이 해서 더 공부할 것이 없다는 분들이 있다. 잠언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기쁨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말씀이다. 그러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라고 했다. 명철한 자란 2절에서 명철의 말씀을 깨닫는다고 할 때 두 번이나 나온 말이다. 2절에서 깨달음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 5절의 명철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 사람이다. 이는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조언을 얻게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미 깨달음의 말씀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얻을 지혜가 없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얻는다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는 뜻이다. Counselor에게 값을 지불하고 조언을 얻는 것처럼 댓가를 지불하고 잠언으로부터 조언을 얻으라는 것이다. 잠언은 최고의 지식과 최고의 조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잠언은 최고의 지혜를 전해 줄 선생이고 최고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조언자 라는 것이다.
6절은 5절에 연결된 말이다. 6절의 핵심 단어는 “깨달으리라” 라는 말이다. 5절에 나온 지혜있는 사람과 명철한 사람이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깨달아 알 수 있는가? 잠언을 통해 깨달을 내용은 두쌍으로 된 네 단어이다. 첫째 쌍은 잠언과 비유이다. 잠언은 히브리어로 마샬이다. 마샬이란 비유나 풍유 속담 등 다양한 형태의 비유적 표현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주로 긴 비유를 가리킨다. 또 비유란 빗대어 비꼬는 말로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하박국 2:4절에 보면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라고 했다. 속담이란 마샬이고 조롱하는 시가 바로 므리짜흐인데 비유라는 말의 뜻이다.
둘째 쌍은 “지혜있는 자의 말과 오묘한 말” 이다. “지혜있는 자의 말” 이란 지혜있는 스승의 강의를 말하는 것이다. 오묘한 말이란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사사기 14:12절에서 삼손이 낸 수수께기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잠언은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강의와 수수께끼 이 네가지를 통해 알게하고 깨닫게 할 것이다.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이라고 했다. 지식이란 4절에서 나온대로 직접 경험을 통해 배워 아는 것이고 또 하나님 말씀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워 아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얻는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근본이란 말은 첫걸음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 첫걸음은 앞을 향해 나가는 첫걸음이 아니다. 이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의 첫걸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향해 올라가는 첫걸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시작이란 뜻은 아니다. 이는 마치 건축물의 맨 아래에 놓인 기초석처럼 지혜라는 건물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높은 계단이라면 그 모든 계단들을 떠 받치는 첫번째 계단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기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잠언의 지혜는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롭게 행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시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세상에서는 정말 똑똑하다 소리를 듣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 해도 멸시하는 사람이다.
잠언에서 1절은 제목이고 실제 서론의 시작은 2절이다. 2절도 지혜와 훈계로 시작하고 서론의 마침도 역시 지혜와 훈계로 마친다. 지혜와 훈계를 말씀을 통해 배워 알고 하나님 말씀의 지식들을 마음에 가득 모아 들인 뒤에 어떤 것이 가장 귀한 것인지 묵상하여 선택하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에 따라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해서 정말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일을 기뻐하고 듣기를 좋아하며 마음에 늘 깊이 새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도 제가 강해를 새로 시작한다거나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 소풍 전날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며 기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주일마다 설교 본문을 읽고 또 읽으며 흥분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예배에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 내 설교 CD나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을 몇번씩 듣고 또 들으며 마음에 담는 분들이 계시다. 이런 분들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런 분들은 그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이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지루해 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런 자리에 가기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흔히 설교나 성경공부가 길다고 불평하면서 끼리 끼리 모여 앉아서 남의 흉을 보는 데는 몇시간도 짧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공부 하자고 하면 자신은 이미 오래 전에 다 배웠다며 자신이 한 성경공부의 이름들을 늘어 놓는다. 이런 분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고 최고로 잘 믿는 척 하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멸시한다.
사진출처: flickr, Pour me some wine please, by Y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