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아는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제가 올린 요한계시록 설교를 들으시고 제 해석과 다른 것이 있다고 하시기에 올린다. 논쟁을 할 의사는 없다. 본인은 원문의 전후 문맥과 문장 구조상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일 뿐이다.
20:4절의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예수의 증언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예수의 증언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이와 병행을 이루는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도끼로 찍힘을 당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4절 중간 부분에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과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나온다. 여기서 또 해석상 문제가 생긴다. 이 관계대명사 절은 도끼로 찍혀 죽은 사람들을 설명하는 말로 해석하기도 하고 순교자들과는 반대로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새번역이나 직역을 하려고 애를 쓰는 ESV나 NASB는 이들도 역시 목베임을 당한 자들을 꾸미는 말로 이어서 번역했다. 하지만 개역이나 의미를 살린 번역을 주로 택하는 NIV나 NLT는 앞부분과 끊어서 번역해서 이들은 죽지 않은 사람들로 이해하도록 번역했다. 원어에는 마침표가 없이 한 문장이기에 그런 사람들도 모두 다 죽임 당한 사람들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타당하게 보인다.
만약 이들이 모든 성도들이라면 순교자들과 순교하지 않은 두종류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첫째는 도끼로 찍혀 죽은 사람들과
둘째는 짐승과 그 우상에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과
셋째는 그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세종류의 사람들이지만 죽은 사람과 나머지 두 종류는 관계대명사 절로 따로 처리하고 있기에 살아남은 사람들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순교자들과 핍박을 당했지만 순교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로 볼 수 있어 요한 당시 모든 성도들을 뜻할 수 있다.
문제는 4절 끝부분에서 부정과거로 그들은 살았고 왕 노릇 하였다는 것이다.
부정과거이기 때문에 미래로 해석하기는 곤란한다. 물론 부정과거도 미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미 한 번 이루어진 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 당시 순교자들은 부활하여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ESV나 NASB처럼 도끼로 찍혀 죽은 사람들을 꾸미는 절로 보는 것이 문맥상 맞다.
가장 큰 문제는 5절이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역시 부정과거이기에 살아나서 왕 노릇하는 사람들과 구별이 된다.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모두 악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모두 부활하여 지상의 천년 왕국에 들어가고 나머지 살아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악한 자들이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1452; Mulholland, 577; Walvoord, 980).
그러나 문맥상 도끼에 찍혀 죽은 자들과 그 나머지가 대조되기에 나머지란 순교자들을 제외한 모든 신실한 자들과 불신자들 모두를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다(Bratcher & Haton, 288; Mounce, 370). Easley는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나머지 죽은 사람들을 요한복음 11:24절에 나타난 것과 같이 일반적인 부활로 본다고 말한다(Easley, 375). 이와 관련해서 또 한가지 주목할 단어는 4절의 영혼(τὰς ψυχὰ) 이라는 단어이다. Charles는 이들이 아직 영광의 몸을 받지 못했기에 영혼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말한다(Charles, 182). 그렇게 본다면 4절의 도끼에 찍혀 죽은 자들은 몸의 부활은 아닌 셈이 된다.
5절의 이러한 신학적인 논쟁은 4-5세기 사본들에서도 발견이 된다. Codex Sinaiticus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했다는 말을 삭제했다. 그러나 Codex Alexandrinus에는 이 부분이 있다. 긴 것과 짧은 것이 있을 때는 짧은 것이 원본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신학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여 삭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 나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원문으로 추정하는 원칙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도 본인의 해석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할 자신은 없다. 다만 본인은 신학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기 보다는 먼저 전후 문맥과 문장의 구조를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몸의 부활이 두 번 있다며 첫번째는 순교자의 부활이고 나머지는 마지막 때 부활한다고 해석한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문 자체는 순교자들의 부활을 몸의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